트럼프 새 안보전략…러시아 ‘환영’ 유럽 ‘불만’

2025-12-08 13:00:24 게재

중러엔 완화된 메시지

유럽 동맹은 소외감

“초강대국 경쟁 회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새롭게 발표한 국가안보전략(NSS)이 세계적인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이 전통적으로 강조해 온 초강대국 간 경쟁과 국제 안보 위협 요소에 대한 기존 기조가 약화 됐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전략은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피하고 유럽 동맹국들에게 압박성 메시지를 던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기류를 반영하듯 러시아는 7일(현지시간) 환영의 뜻을 분명히 했다. 크렘린궁 대변인 드미트리 페스코프는 러시아 타스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조치는 긍정적이며 미국의 이전 행정부와는 다른 접근”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보고서에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대규모 인명 피해를 초래했다는 언급조차 찾기 어렵다. 대신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조속히 종식하는 것이 자국의 핵심 이익이라며 전략적 안정을 강조했다. 보고서 곳곳에는 러시아와의 협상 가능성 및 중립적 역할에 대한 기대가 배어 있다.

중국에 대한 표현도 상당히 누그러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이라는 단어 대신 ‘비 서반구 경쟁국’이라는 간접적 표현을 사용했고 중국과의 경제적 상호이익 관계를 강조했다. 2022년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은 미국이 직면한 최대 도전”이라고 선언한 것과는 명백한 차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를 “보다 온건한 접근”으로 분석했고, 학계 전문가들도 중국이 이번 전략을 유리한 국면 전환으로 평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유럽의 반응은 냉담하다. 전략에는 유럽이 “문명의 소멸”에 직면해 있으며 “애국적인 정당”이 부상해야 한다는 식의 표현이 포함됐다. 이는 일부 극우 정당과 유사한 언어로 유럽 내 정치 개입 시도라는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독일 외무장관 요한 바데풀은 “표현의 자유와 같은 가치가 미국의 전략에 포함될 이유는 없다”며 우려를 표했고, 폴란드 총리 도날드 투스크는 “유럽은 미국의 문제가 아니라 동맹”이라며 불만을 드러냈다.

새 전략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초강대국 간 경쟁 개념의 실종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와 중국의 군사적 위협, 사이버 공격, 핵무기 확대가 모두 전략에서 빠졌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핵무기 확대나 이란의 핵 개발 가능성 같은 중대 안보 이슈도 언급이 거의 없거나 모호하게 처리됐다. 2017년 트럼프 1기 전략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수정주의 강대국”으로 규정했던 것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미국 내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전략이 미국의 외교 리더십을 약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하원 정보위원회의 제이슨 크로우 의원은 “이 전략은 세계에서 미국의 위상을 해칠 수 있다”고 비판했고, 뉴욕의 그레고리 믹스 의원은 “가치 중심의 미국 외교를 폐기한 셈”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보고서에서 유럽 동맹국들보다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비판이 더 약하다는 지적은 곳곳에서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략 발표 후 “미국은 앞으로 수십 년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국가로 남을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내용상으로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이념이 더욱 강조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러시아 중국 이란 북한 등 전통적 안보 위협에 대한 명확한 대응보다는 이민 통제, 국경 보안, 서반구 영향력 회복 같은 자국 중심의 의제가 중심을 이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 전략이 단기적 정치 목적에 치우쳤다고 경고한다. 듀크 대학교 피터 피버 교수는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표현이 모호하다”며 “트럼프의 첫 전략과 비교해도 이번에는 전략적 경쟁이 빠져 있다”고 분석했다. 스탠포드 대학의 핵 전문가 스콧 세이건은 “이란 핵문제에 대한 구체적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결국 이번 전략은 초강대국 간의 긴장보다 경제와 이념의 균열, 그리고 국내 정치적 우선순위에 집중된 문서로 평가된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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