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WBD 인수,할리우드 판 흔든다

2025-12-08 13:00:26 게재

830억달러 인수금 중 590억달러 차입

스트리밍·극장·제작 생태계까지 변화

넷플릭스가 워너브러더스디스커버리(WBD)를 약 830억달러에 인수하기로 하면서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또 한 번 요동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번 거래는 웰스파고가 주도한 590억달러 규모의 브리지론을 기반으로 성사됐다. 브리지론은 장기 조달이 준비되기 전까지 인수 자금을 먼저 마련하는 단기 금융으로, 이후 시장 상황에 맞춰 회사채나 대출로 전환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자금 조달에는 웰스파고, BNP파리바, HSBC가 참여했다. 넷플릭스는 거래 종료 후 장기 부채로 갈아타며 재무 구조를 정비할 계획이다. 스펜서 뉴먼 넷플릭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단기적으로 부채가 늘어나지만 2년 안에 신용등급 목표 수준을 회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수는 넷플릭스의 콘텐츠 전략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거래다. WBD는 해리포터, 왕좌의 게임, 프렌즈 등 세계적으로 검증된 프랜차이즈를 보유하고 있으며, HBO의 제작 역량과 DC 유니버스까지 갖추고 있다. FT의 렉스(Lex) 칼럼은 넷플릭스가 고전 작품의 사용계약을 활용해 웬즈데이 같은 히트작을 만든 사례를 언급하며, 이번 인수가 넷플릭스의 장기 성장 기반을 크게 넓혀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거래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콘텐츠 수급 때문만은 아니다. 넷플릭스는 오래전부터 극장을 거치지 않고 자체 제작물을 스트리밍에 바로 공개하는 방식을 유지해왔지만, WBD 인수는 극장 창구까지 품는 전통 제작 시스템과의 결합을 의미한다. 넷플릭스가 버뱅크의 워너 스튜디오 롯을 인수하게 되면 제작·배급 구조가 달라질 수 있고, 극장 개봉을 원하는 감독·배우들과의 협업에도 새로운 여지가 생긴다. 스트리밍만으로는 확보하기 어려운 프랜차이즈 장기 운영 능력이 강화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또 하나 주목되는 부분은 거액의 위약금 구조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거래가 규제 등으로 무산될 경우 WBD에 58억달러의 계약 해지 수수료(break-up fee)를 지급하기로 했다. 반대로 WBD가 경쟁사 제안을 선택하면 약 28억달러의 수수료(reverse break-up fee)가 발생하며, 이는 새로운 매수자가 부담하는 것으로 설계돼 있다. 즉 경쟁사가 WBD를 가져갈 경우 넷플릭스가 이 보상금을 받게 되는 구조다. FT가 이번 인수를 두고 “이겨도 좋고 져도 좋은” 승부라고 평가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과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WBD는 영화 스튜디오, 케이블 네트워크, HBO, 스트리밍이 혼합된 회사로, 넷플릭스가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대규모 통합 작업이 요구된다. 미국 규제 당국의 심사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그럼에도 인수를 성사시키면 넷플릭스는 제작부터 극장, 글로벌 스트리밍까지 이어지는 새로운 성장 경로를 확보하게 된다.

이번 거래는 스트리밍 경쟁을 넘어 엔터네인먼트 업계가 제작·극장·프랜차이즈 중심으로 재편되는 새로운 국면을 열 것으로 보인다. 콘텐츠 수급 경쟁이 ‘구독자 전쟁’에서 ‘프랜차이즈 전쟁’으로 옮겨가면서 할리우드의 제작 방식과 유통 질서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FT가 이번 인수를 “다음 회차의 클리프행어”라고 표현한 것도 산업 재편이 이제 막 시작됐다는 의미로 읽힌다.

누가 최종적으로 WBD를 가져가든, 이번 거래가 미디어 산업 전반에 미칠 영향은 이미 시작됐다. 넷플릭스의 결정은 스트리밍과 극장을 잇는 새로운 제작 생태계를 예고하며, 할리우드 판도를 다시 그리는 출발점이 되고 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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