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2026년 ‘K-평화’ 원년을 기대한다

2025-12-09 13:00:01 게재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한 공개석상에서 내년이면 남북관계가 단절된 지 햇수로 8년이 된다고 토로했다. 냉전시대를 제외하면 그간 남북관계사에서 이렇게 장기간 단절된 적은 없었다. 특히 지난 윤석열정부의 강경한 대북정책으로 남북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몇년이 허비했다. 그동안 북한은 더 이상 기댈 것이 없는 남한을 버리고 화해도 대화도 통일도 버렸다.

한국에 진보정부가 출범해 북한에 대해 적대시하거나 체제를 전복시킬 의사가 전혀 없다는 점을 반복해도 때는 늦은 감이다. 핵무기라는 체제 보위의 보검을 완성하고 중국과 러시아에 러브콜을 받고 있는 입장에서 골치 아프게 옛 인연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바늘구멍이라도 뚫고 싶다는 현실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지금 상황에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대화없이 적대적으로 지내온 지 8년이 다 되어 가는 마당에 핵무기를 개발하고 막대한 국방비를 지출하는 일촉즉발의 대결구조에서 양측 모습은 누가 봐도 불안하다. 서로를 존중하고 대화하면서 평화롭게 지낸다면 이러한 군사적 대결과 불완전한 평화는 불필요할 것이다.

‘싸울 필요가 없는 평화상태가 가장 확실한 안보’라는 것이 이재명정부를 관통하는 평화철학이다. 평화가 밥이라는 말도 그런 의미다. 이 싸움을 누가 시작했느냐, 누가 더 잘못했느냐를 따지자면 한도 끝도 없다. 서로 남 탓만 하게 되면 더 이상 남북관계는커녕 평화통일도 어렵다.

일방적 통일보다 평화공존이 국민여론

대부분의 여론조사를 보면 우리 국민 대다수는 남북간 대결보다는 평화를 선호하고 있다. 인위적이고 일방적인 통일보다는 당분간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는 것이다. 대결구도 속의 대북정책보다는 평화구도 속의 대북정책 추진에 더 후한 점수를 준다. 평화로운 바탕 위에 남북이 상생해 공존공영하는 미래를 누가 반대하겠는가? 그렇다면 관계를 평화롭게 유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해 나가는 것이 맞다.

일각에서는 피스메이커-페이스메이커 분담론에 대해 한국이 패싱당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한다. 그러나 페이스메이커 역할론은 우리의 역할을 포기한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현실적으로 상황 주도가 어려운 상황에서 우선적으로 기회가 되는 것을 해보겠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도 얼마전 기자간담회에서 “현재로서는 바람직하지 않지만 우리가 끊임없이 대화 환경을 조성하는 조정자 역할을 하고, 이것이 결국 근본적으로 주체적으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길로 이어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아쉽지만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접근이라는 고뇌가 담겨있다.

페이스메이커의 역할이 주 마라토너가 승리할 수 있도록 환경과 여건을 조성하는 역할이라면 우리가 남북관계에 있어 진심과 성의를 보여주는 데 있어 나름 유연성을 보여줄 여지가 있다. 북한이 그토록 적대조치로 여기는 한미연합훈련을 일시 중단하는 것도 만약 그 평화적 효과가 크다면 적극 검토해야 한다.

윤석열정부 시기 우리가 의도적으로 무인기 전단 살포를 단행한 것도 그 진위가 입증될 경우 북한에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것도 신뢰 구축에 도움이 될 것이다. 대미 대중 대북특사 파견 등을 통해 우리의 진위를 북한에 정확히 전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완전한 비핵화에 앞서 북한의 추가적인 핵개발을 동결하는 스몰딜도 아쉬워해서는 안된다.

남북관계 복원 위한 창의적 조정자 역할해야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2026년 우리는 대북·외교전락에 있어 북미대화의 문턱을 낮추고 남북관계 복원의 전략적 창을 여는 창의적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 내년 4월 미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미정상회담이 추진된다면 기회의 창이 열릴 수 있다.

2018년 평창 평화프로세스와 같이 우리가 직접 북한을 이끌고 나오지는 못하겠지만 북미대화에 앞서 우리가 전략적인 의제와 해법 들을 제시해 미측과 조율해 나갈 수 있다면 실용적인 방향으로 협상을 전개시킬 수 있을 것이다. 2026년에도 정세의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한해가 되겠지만 지속가능한 평화를 위한 노력을 지속해 가는 ‘K-평화’의 원년이 되기를 기대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