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너브러더스, 인수전의 ‘진짜 승자’

2025-12-09 13:00:01 게재

파라마운트, 1084억달러 적대적 인수 제안 뛰어들어

정치변수·규제·자금력 얽힌

‘할리우드 대전’서 몸값↑

워너브러더스디스커버리(WBD)가 할리우드 대형 인수전의 중심에서 가장 확실한 ‘수혜주’로 부상하고 있다.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가 1084억달러 규모의 적대적 인수 제안을 공개하며 넷플릭스와의 기존 합의를 흔들었고, 이는 WBD 주가를 둘러싼 프리미엄 경쟁을 본격화하는 계기가 됐다.

로이터는 이번 제안이 부채 포함 827억달러 수준이며, 넷플릭스의 기존 거래에는 약 58억달러의 계약 해지 수수료가 붙어 있다고 전했다.

특히 파이낸셜타임스(FT)의 렉스(Lex) 칼럼이 새롭게 강조한 부분은 파라마운트의 제안이 단순히 ‘더 비싼 거래’가 아니라 WBD 주주에게 훨씬 명확하고 평가하기 쉬운 구조라는 점이다.

넷플릭스는 WBD 일부 자산만 인수하려 하기 때문에 CNN 등 TV 네트워크를 떼어내는 스핀오프 조건이 붙고, 해당 사업의 가치에 따라 전체 거래 가치가 달라지는 불확실성이 있다. 반면 파라마운트는 주당 30달러 올 캐시 방식, 즉 회사 전체를 단순하고 일관된 가격으로 매입하는 방식을 제시해 WBD 주주에게 ‘확정된 가치’를 준다. FT는 이를 “한눈에 계산 가능한 제안”이라고 평가했다.

넷플릭스 제안이 일부 현금과 일부 자사 주식으로 구성돼 있는 점도 차이다. FT는 넷플릭스 주가가 올해 고점 대비 30%가까이 떨어진 상태라, 현금·주식 혼합 구조는 실제 수령 가치가 달라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파라마운트는 현금 지급이므로 WBD 주주 입장에서는 불확실성이 가장 적다는 평가다.

파라마운트의 인수 제안에는 콘텐츠 제작자들의 반응이라는 ‘현장 변수’도 있다. FT는 넷플릭스가 극장 개봉에 상대적으로 비협조적인 행보를 보여 왔다는 점을 언급하며, 감독·작가·배우 등 업계 종사자들이 파라마운트를 더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이는 규제 심사뿐 아니라 산업 내 수용성 측면에서도 파라마운트가 우위에 설 수 있음을 뜻한다.

여기에 정치적 변수가 이번 인수전의 또 다른 축으로 떠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넷플릭스-WBD 결합에 대해 “시장 점유율이 과도하게 커질 수 있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며, “심사 과정에 직접 관여하겠다”고까지 언급했다. 대통령이 특정 기업 인수합병에 직설적으로 의견을 밝히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로 직전 백악관 행사에서 넷플릭스 CEO 테드 사란도스를 만난 사실도 알려졌는데, 이는 정치·규제 환경이 이번 인수전의 또 다른 불확실성으로 자리 잡았다는 뜻이다. 이 불확실성은 넷플릭스 쪽으로 더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 시장의 중론이다.

업계에서는 비판적 시각도 적지 않다. 전 WBD CEO 제이슨 킬라는 “할리우드 경쟁을 줄이고 싶다면 WBD를 넷플릭스에 파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바클레이스 애널리스트들도 넷플릭스가 이미 기존 스튜디오 체제를 흔든 장본인인데, 다시 그 스튜디오를 800억달러 가까운 금액을 들여 인수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타당한지 의문을 제기한다.

시장도 비슷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예측시장 폴리마켓(Polymarket)에서는 파라마운트 제안 발표 이후 “넷플릭스의 거래가 성사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수치로 명확히 반영됐다. 공개 직전 약 20%였던 넷플릭스의 거래 성사 확률은 발표 직후 곧바로 16%로 급락했으며, 이후에도 낮은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이는 시장 참여자들이 넷플릭스 딜의 규제 위험을 더 높게 보고 있다는 의미다.

한편 FT는 파라마운트 입장에서 이번 인수의 재무적 매력도 언급했다. WBD는 내년 약 60억달러의 잉여현금을 낼 것으로 예상되며, 비용 절감 효과까지 더하면 투자수익률이 10% 이상 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두 회사가 합산해 매년 약 370억달러 규모의 콘텐츠 제작비를 쓰고 있어 향후 감축 여지도 큰 것으로 평가됐다.

그럼에도 FT는 “대형 미디어 인수합병은 역사적으로 성공 사례보다 실패 사례가 많다”며 파라마운트가 향후 높은 부채 부담과 조직 통합 문제를 안고 출발하게 될 가능성도 경고했다. 넷플릭스가 이번 경쟁에서 밀린다고 해서 ‘패배’로 볼 수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WBD 주주 입장에서의 결론은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인수전이 치열할수록 부담은 인수 기업이 떠안고, 프리미엄은 WBD 주주에게 돌아간다. 파라마운트와 넷플릭스, 그리고 정치적 변수까지 얽힌 이번 ‘할리우드 대전’에서 최종 승자가 누구든, WBD 주주는 사실상 무위험의 수혜를 얻는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는 평가가 시장에서 힘을 얻고 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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