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미 방위산업 판도 흔든다

2025-12-09 13:00:01 게재

신생업체 점유율 두배 급증

빅4 점유율은 92% 제자리

지난 10월 13일(현지시간) 벨기에 플로넝 공군기지 활주로에 F-35A 라이트닝 II 전투기가 대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방위산업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첨단 기술 기업들이 국방부 조달 시장에서 빠르게 입지를 넓히면서, 수십 년간 몇몇 대기업이 지배해온 방산 생태계가 변화의 기로에 섰다. 무인 ‘윙맨’ 전투기, 드론 보트, AI 기반 자율 소프트웨어 등을 개발하는 비상장 기업들의 기업가치가 올해 급등했다. 러시아 침공에 따른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론이 전황을 바꾸면서 차세대 무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영향이다.

올해 3분기까지 신생 방산기업들이 펜타곤에서 따낸 계약 비중은 1.3%로, 작년 같은 기간의 0.6%에서 두 배 이상 뛰었다고 로이터가 8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방산 분석업체 거비니 자료를 인용해 분석했다. 반면 보잉, 록히드마틴, RTX, 노스럽그러먼 등 ‘빅4’의 점유율은 92%로 제자리였고, 유럽 방산업체 비중은 7.4%에서 6.6%로 줄었다.

지난 5~6일 캘리포니아 시미밸리에서 열린 연례 레이건 국방포럼에서는 4성 장군들과 워싱턴 방산 최고경영자들, 야구 모자를 쓴 AI·드론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최첨단 기술의 전장 적용 방안을 논의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기조연설에서 대형 방산업체 중심 조달 구조를 탈피해 민첩한 상업 기술 기업들이 무기 생산 속도를 끌어올리는 체제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만만치 않다. 패트리엇 미사일과 F-35 엔진을 만드는 RTX의 크리스토퍼 칼리오 최고경영자는 시제품에서 양산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전혀 다른 차원의 어려움을 수반한다고 지적했다. 애틀랜타 극초음속 무인기 개발사 허뮤스의 재크 쇼어 최고매출책임자도 1000만~3000만달러 규모 시제품 계약을 따내도 대형 정규 프로그램으로 전환하는 단계에서 막힌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올해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미 공군 전투기 사업, 1750억달러 규모 ‘골든 돔’ 미사일 프로젝트 등 주요 사업은 대부분 기존 대형 업체들 차지였다. 안두릴의 트레이 스티븐스 회장은 방산이 본질적으로 매우 어려운 산업이라며, 국방부 예산으로 새로운 빅4를 여럿 만들어낼 여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변화의 조짐은 곳곳에서 포착된다. 지난 10월 방산 기업에 100억달러 직접 투자를 발표한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는 자만과 관료주의가 겹치면 대기업도 시장에서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L3해리스 테크놀로지스의 크리스 쿠바식 최고경영자는 방산 생산능력 확충을 위해 신구 기업 모두의 역량을 활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9월에는 샌디에이고의 실드AI가 미국 최대 군용 조선업체 HII와 자율운항 선박 개발 파트너십을 발표했고, 지난달에는 안두릴이 HD현대중공업과 손잡고 군사용·상업용 선박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안두릴 전략 총괄 잭 미어스는 미국 방산 조달 구조가 전환점을 향해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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