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에너지

태양광이 걸어온 길, CCS(탄소포집·저장)가 걷게 될 미래

2025-12-10 13:00:02 게재

“태양광은 그저 비싼 장난감일 뿐이다.” 1954년 미국 벨 연구소(Bell Labs)가 실리콘 태양전지를 세상에 처음 공개하며 작은 장난감 관람차를 돌려 보였을 때 쏟아진 반응은 경탄보다는 냉소에 가까웠다. 당시 1와트(W)의 전기를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은 현재 가치로 수천달러에 달했기에 석탄과 석유가 헐값에 에너지를 공급하던 그 시절 햇빛 발전은 ‘신기하지만 비싼 과학 실험’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70년이 지난 지금 판도는 완전히 뒤집혔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전세계 신규 발전 설비의 약 86%가 재생에너지로 채워졌으며, 태양광과 풍력은 명실상부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주류로 등극했다.

이러한 재생에너지의 역사는 ‘학습곡선(Learning Curve)’을 뚜렷하게 증명한다. 초창기 6% 효율에 불과했던 태양전지는 누적 생산량이 두배가 될 때마다 가격이 약 20%씩 하락한다는 ‘스완슨의 법칙(Swanson’s Law)‘을 정확히 따랐다. 1976년 와트당 100달러가 넘었던 모듈 가격이 현재 0.2달러 미만으로 99.8% 이상 폭락한 것은 기술 개발, 정책적 지원, 그리고 대량생산이 맞물려 만들어낸 결과다.

풍력발전 역시 마찬가지다. 19세기 말 찰스 브러시가 고안한 투박한 풍차는 오늘날 해상에 우뚝 선 15MW급 초대형 발전기로 진화했다. 세계적인 에너지 비용 분석 기관인 라자드(Lazard)가 2024년 6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5년(2009~2024) 동안 육상 풍력의 균등화발전비용(LCOE)은 약 63%나 하락했다. 이제 주요 선진국에서 재생에너지는 보조금이라는 '보호막' 없이도 화석연료와 경쟁하는 저렴한 에너지원이 되었다.

CCS 비용도 ‘죽음의 계곡’ 지나고 있어

탄소포집·저장(CCS) 기술은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인위적으로 포집해 영구 격리하는 기술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화석연료의 수명 연장을 위한 면죄부” “경제성이 결여된 고비용 기술”이라고 비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현재 톤당 100달러를 상회하는 높은 포집 비용은 분명 거대한 장벽이다. 그러나 우리는 비용 논란 너머에 있는 '기술적 불가피성'을 직시해야 한다.

시멘트 철강 석유화학 등 소위 '난감축(Hard-to-abate)' 산업은 전세계 탄소배출량의 약 30%를 차지한다. 문제는 이들 산업이 단순히 연료를 전기로 바꾼다고 해서 탈탄소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령 시멘트는 원료인 석회석을 가열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탄소를 배출한다. 이는 연료 연소가 아닌 원료 자체의 화학반응인 '공정 배출(Process Emission)'의 문제다. 즉, 이 영역은 CCS 없이는 물리적으로 탄소중립이 불가능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CCS 기술 확보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국토가 좁고 산지가 많은 데다 바람 자원마저 상대적으로 빈약한 한국은 태생적으로 재생에너지의 발전 단가(LCOE)가 높게 형성될 수밖에 없는 ’지리적 핸디캡‘을 안고 있다.

반면 우리 경제를 떠받치는 반도체 철강 석유화학 등 주력 산업은 에너지 다소비형이자 난감축 업종에 속한다. 제조업 비중이 GDP의 27%를 상회하는 '제조업 강국' 대한민국에서,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탄소를 줄일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강력한 대안은 결국 CCS일 수밖에 없다.

다행히 CCS 기술은 현재 초기 태양광 산업이 겪었던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지나고 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개정해 탄소포집 세액공제(45Q) 혜택을 대폭 강화했다. 유럽연합(EU) 역시 탄소중립산업법(NZIA)으로 이를 전략 육성 중이며 글로벌 CCS 연구소에 따르면 관련 프로젝트 용량은 매년 급증하고 있다.

미래 전망도 밝다. 국제에너지기구(IEA)와 우드맥킨지(Wood Mackenzie) 등 주요 분석 기관들은 기술 혁신과 대형 허브(Hub) 구축을 통해 향후 CCS 비용이 현재의 30~50% 수준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태양광이 그리드 패리티(Grid Parity)를 달성했듯, CCS도 탄소 배출권 가격과 포집 비용이 역전되는 ‘카본 패리티(Carbon Parity)’ 시점에 곧 도달하게 될 것이다.

기술 믿고 정책 지원하며 시장 만들어야

기후위기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재생에너지만으로는 넷제로 달성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IEA와 IPCC의 공통된 분석이다. 과거 우리가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며 태양광과 풍력을 키워냈듯 이제는 CCS라는 '미완의 대기(大器)'를 위해 인내심을 갖고 투자해야 할 때다. 오늘의 비용은 내일의 기후 재앙을 막고 우리 산업을 지키기 위한 가장 저렴한 보험료이기 때문이다. 기술을 믿고, 정책으로 지원하며, 시장을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에너지 역사에서 배운 가장 확실한 승리의 방정식이다.

이승국 한양대 대우교수 에너지자원공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