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언론자유와 책임 사이, 50년의 질문

2025-12-10 13:00:01 게재

배우 조진웅이 은퇴를 선언했다. 30년 전 소년범 전력이 언론에 보도되면서다. 독립운동가와 열혈 형사 등을 연기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배우가 고등학생 때의 과오로 연예계를 떠나야 하는 상황. 이 충격적인 사건은 단순히 한 배우의 불운이 아니다. 언론은 무엇을 어떻게 보도해야 하는가, 알 권리와 인권은 어디에서 균형을 이뤄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우리 사회에 던지고 있다.

때마침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1970~1980년대 언론 탄압의 실상과 그에 맞선 저항의 역사를 조명하는 특별전을 열고 있다. 전시는 우리에게 언론자유를 위해 싸웠던 선배 언론인들의 용기를 상기시킨다. 그중에서도 1974년 10월 24일은 한국 언론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날이다.

그날,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기자 300여명은 유신독재의 언론 탄압에 맞서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했다. “외부의 일체 간섭을 배격한다.” “정보기관원의 출입을 거부한다.” “기자에 대한 불법 연행을 거부한다.” 선언문의 문장들은 간결했지만 그 무게는 무거웠다.

권력은 즉각 광고주들을 압박했고 130여명의 기자가 해직당했다. 하지만 이들은 굴복하지 않았다. 언론이 권력의 시녀가 아니라 국민의 눈과 귀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지켰다.

조진웅 사건, '언론의 자유'를 다시 묻는다

50년이 지난 지금, 언론운동단체들은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해달라고 청원했다. 언론자유를 위한 투쟁이 오늘날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자는 취지다.

그런데 이 청원이 제기된 시점에 조진웅 사건이 터졌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1974년 언론인들이 외부의 부당한 간섭에 맞서 싸웠다면, 2025년 언론은 스스로의 윤리와 책임 앞에서 시험받고 있기 때문이다.

조진웅 사건의 핵심은 이것이다. 소년법은 왜 존재하는가. 미성년자의 범죄 전력을 보호하는 이유는 갱생 가능성을 믿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때 저지른 잘못이 평생 그를 따라다니며 삶을 무너뜨려서는 안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법에 담겨 있다. 그런데 언론이 30년이 지난 소년범 전력을 실명으로 보도한다면 그것은 법의 취지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다. 공익을 위한 보도인가, 아니면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한 폭로인가.

물론 언론은 알 권리를 대변해야 한다. 공인의 과거가 현재의 공적 역할과 충돌할 때 국민은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 하지만 14세 소년의 과오가 50대 배우의 연기 활동과 어떤 공적 관련성이 있는가. 그가 청소년 범죄 예방 캠페인을 주도했거나 소년법 폐지를 주장했다면 모를까, 단지 독립운동가와 민주화 인사를 연기했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소년범 전력이 공익적 보도 가치를 갖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1974년 자유언론실천선언의 정신은 단순히 ‘무엇이든 보도할 자유’가 아니었다. 그것은 권력의 부당한 간섭을 배제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진실을 보도하되, 언론 스스로 윤리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선언문 어디에도 “알 권리를 명분으로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겠다”는 내용은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권력이 언론을 도구화하는 것에 맞서 싸웠다. 그렇다면 2025년 언론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독자의 알 권리를 위해 보도하는가, 아니면 클릭 수를 위해 개인의 과거를 소비하고 있는가.

조진웅 사건은 한국 언론에 뼈아픈 거울을 내민다. 언론자유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선배들의 희생 위에서 우리는 그 자유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말은 진부하지만 진실이다. 권력의 간섭에서 자유로운 언론은 이제 스스로의 윤리 앞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한국 언론 스스로의 윤리 앞에 자유로운가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은 언론이 나아갈 방향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50년 전 선배 언론인들이 지키고자 했던 언론자유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국민의 알 권리와 개인의 인권이 조화를 이루는 책임 있는 보도였다.

조진웅의 은퇴 선언이 던진 질문에 한국 언론이 어떻게 답하는지를 지켜보는 것은, 결국 우리가 언론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 될 것이다.

신동호 현대사기록연구원 연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