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엔비디아 H200 칩 제한 태세

2025-12-10 13:00:01 게재

트럼프가 대중국 수출 허용했지만 … 반도체 자급 위해 규제 강화

중국이 자국 내 반도체 자급을 추진하는 가운데,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엔비디아의 H200 칩 수출을 허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음에도 중국 당국이 해당 칩 접근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8일(현지시간)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들을 인용해 베이징 규제 당국이 엔비디아의 차세대 고급 인공지능(AI) 칩인 H200에 대해 제한적 접근만 허용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중국 내 수요 기업이 칩 구매 요청서를 제출하고, 왜 국산 칩으로는 수요를 충족할 수 없는지 설명하는 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다만 최종 결정은 내려지지 않은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미국이 중국 내 승인된 고객에 한해 조건부로 H200 수출을 허용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는 H200 판매액의 25%를 미국에 지급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으나, 구체적 방안은 알려지지 않았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엔비디아가 H200보다 사양이 낮은 H20 칩을 중국에 판매할 경우 매출의 15%를 정부에 납부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법적 구조를 마련하지 못해 시행되지 못한 바 있다.

H200을 포함한 첨단 AI 칩의 중국 수출은 바이든 행정부 시절 군사용 전용 가능성 등을 이유로 금지됐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수출 금지 해제를 위해 꾸준히 로비를 벌여왔으며, 백악관 AI 담당 데이비드 색스 등 지지자들은 중국을 미국 기술에 의존하게 만드는 것이 미국에 유리하다는 논리를 펴왔다.

중국은 미국의 수출 금지를 계기로 국산 반도체 육성 속도를 높여왔다. 칩 수입에 대한 세관 검사를 강화하고, 국산 칩을 사용하는 데이터센터에 에너지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국산화를 촉진하고 있다. 중국의 반도체 자립 전략을 총괄하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와 공업정보화부(MIIT)는 공공부문의 H200 구매 자체를 금지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 칩의 복귀는 알리바바, 바이트댄스, 텐센트 등 중국 빅테크 기업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이들은 일부 기본적인 AI 업무에 중국산 칩을 사용해왔지만, 성능과 유지관리 면에서 엔비디아 제품을 선호해왔다. 많은 기업들이 국내에서 사용할 수 없는 엔비디아 칩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에서 AI 모델을 학습시키는 방식까지 동원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H200 수출에 긍정적 신호를 보냈지만, 미 의회에서는 반대 움직임도 있다. 초당적 상원의원 그룹은 H200을 포함한 첨단 칩의 대중 수출 승인을 30개월 동안 금지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다만 의회 내 공화당 의원 상당수는 이번 사안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않고 있어, 법안 처리 전망은 불투명하다.

공교롭게도 법무부가 밀수 사건을 발표한 같은 날 트럼프의 수출 허용 발표가 나왔다. 8일 미 법무부는 엔비디아 H100·H200 칩을 중국으로 밀반출하려던 혐의로 중국인 남성 2명을 체포했다.

이들은 2024년 10월부터 2025년 5월까지 최소 1억6000만달러(약 2355억원) 규모의 칩을 밀수하려 했으며, 휴스턴 업체와 미국 내 창고를 거점으로 라벨을 위조해 수출 규제를 우회하려 했다.

이 사건은 AI 칩을 둘러싼 미중 기술 경쟁의 현 단면을 보여준다. 미국이 강력한 수출 통제와 밀수 조직 적발을 병행하면서도, 엔비디아의 시장 접근과 미국 기술의 글로벌 표준 유지를 위해 일부 칩의 수출을 조건부로 허용하는 이중적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는 중국이 자체 AI 칩 개발을 육성하면서도 여전히 미국 기술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며, 향후 AI 기술 패권 경쟁의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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