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대형 차입거래 급증…"위험 쌓여가"
파라마운트 인수전, EA 비상장화 등
대규모 부채 인수 거래에 채권시장 긴장
월가에서 초대형 부채 인수 거래가 빠르게 되살아나고 있다. 파라마운트의 워너브러더스디스커버리(WBD) 인수 시도부터 사상 최대 규모의 일렉트로닉아츠(EA) 비상장화까지, 대형 거래가 줄줄이 등장하며 금융시장의 위험 선호가 다시 고조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9일 보도에 따르면 100억달러 이상 대형 인수합병(M&A)은 올해 사상 최대 금액을 기록했으며 상당 부분이 차입으로 충당되고 있다.
가장 큰 관심은 파라마운트가 제시한 779억달러(주식가격 기준) 규모의 WBD 인수전이다. 이 가운데 540억달러는 뱅크오브아메리카, 시티그룹,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가 약정한 부채로 마련된다. WSJ는 인수 구조가 시장 예상보다 훨씬 공격적인 차입에 의존하고 있어 채권 투자자들이 불안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전했다.
파라마운트가 적대적 인수안을 발표한 직후 WBD 채권은 하루 동안 4억5000만달러가 거래됐으며, 12월 들어 가격은 약 5% 떨어졌다.
우려는 WBD의 재무 구조와도 맞닿아 있다. WBD는 2022년 AT&T에서 분사한 워너미디어와 디스커버리 합병으로 약 500억달러의 부채를 떠안았고, 이후 비용 절감과 현금흐름 개선으로 부채 축소에 집중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파라마운트와의 결합은 다시 재무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럼에도 파라마운트는 통합 후 “수십억달러 규모의 비용 절감”을 통해 2년 내 투자적격 등급 회복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S&P글로벌레이팅스 미디어 부문 이사 자와드 후사인은 “돌이켜보면 대형 미디어 인수는 대부분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다”고 경고했다.
WSJ는 WBD가 결국 넷플릭스의 제안을 선호한 것도 자금조달의 안정성 때문이라고 전했다. 넷플릭스는 충분한 현금과 싱글A급 신용등급을 갖춰 단독으로 인수 절차를 밟을 수 있지만, 파라마운트는 여러 은행·사모펀드·래리 엘리슨 일가 및 레드버드캐피털의 지분 참여 등 복잡한 조달 구조에 의존하고 있어 시장 불안 시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초대형 차입 거래는 미디어 산업에 그치지 않는다. 올해 사우디 국부펀드(PIF)와 실버레이크가 주도한 EA의 약 550억달러 규모 비상장화에도 200억달러의 부채가 포함됐다. 2022년 트위터 인수 당시 130억달러 대출을 떠안았다가 장기간 미매각 상태로 묶였던 경험 때문에 대형 차입 딜을 기피하던 월가 은행들이 다시 시장에 뛰어드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골드만삭스 경영진은 최근 콘퍼런스에서 “기업들이 규모 확대, 기술 확보, 관세 부담 대응 등을 위해 대형 거래를 다시 선택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모엘리스의 나비드 마무드자데간 최고경영자(CEO)도 “2026년을 향한 M&A 전망은 매우 양호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WSJ는 이 같은 레버리지 확대가 결국 채권시장의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수 경쟁이 계속될수록 부채 규모는 더 커지고, 이는 결국 신용시장의 또 다른 불안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WSJ는 “초대형 부채 거래의 재등장은 월가의 자신감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새로운 위험을 쌓아가고 있다”고 전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