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전쟁의 흔적
태국-캄보디아, 책임 공방 충돌
크메르 루즈 유산이 분쟁 촉발
태국과 캄보디아 국경에서 다시 총성이 울렸다. 2025년 들어 다시 격화된 무력 충돌로 인해 최소 12명이 사망하고 수십만 명이 집을 떠났다. 갈등의 중심에는 수십 년 전 캄보디아 내전의 유산인 지뢰가 있다. 특히 태국은 최근 발생한 지뢰 폭발로 인해 자국 군인 18명이 다쳤으며, 이 중 7명이 사지를 잃었다고 주장한다. 일부 사건은 11월 태국 시사껫(Sisaket) 주에서 발생했으며, 이는 양국 간 평화회담이 결렬되는 계기가 됐다.
1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태국은 캄보디아가 대인지뢰를 새로 매설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7월 한 군인이 지뢰폭발로 중상을 입자 태국은 F-16 전투기로 캄보디아 목표물을 공격했고 이로 인해 최소 40명이 사망했다. 이후 양국은 일시적 휴전에 합의했지만 긴장은 해소되지 않았고, 12월 들어 전투가 재개됐다. 태국 외무장관 시하삭 푸앙켓케우는 지난주 제네바에서 열린 회의에서 캄보디아가 오타와 조약(지뢰금지협약)을 위반했다며 관련 영상을 공개하고 유엔의 독립 조사를 요청했다. 그는 “캄보디아는 거짓 피해자 서사를 퍼뜨리고 있다. 그러나 군인들이 지뢰로 부상을 입은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캄보디아는 이 모든 주장을 부인하고 있다. 캄보디아 지뢰 제거 및 피해자 지원 당국의 리 투치 제1부사장은 “지뢰들은 모두 태국 영토 내에 있었고 캄보디아 군은 해당 지역에 접근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오히려 태국이 캄보디아를 공격할 명분을 만들기 위해 지뢰 사건을 조작했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해 국제 지뢰 금지 캠페인의 일원인 ‘지뢰 감시단(Landmine Monitor)’ 소속 전문가 예슈아 모저-푸앙수완은 태국 군이 제출한 지뢰 16개를 조사한 결과 모두 구 소련제였다고 밝혔다. 이 지뢰들은 1980년대 크메르 루즈의 재침투를 막기 위해 캄보디아 북서부 국경에 설치된 ‘K5 지뢰 벨트’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지뢰들이 최근에 설치된 것인지 아니면 과거에 묻힌 것이 이제야 폭발한 것인지 불분명하다는 데 있다. 양국 모두 오타와 조약 서명국으로 과거 보유하던 지뢰를 폐기했다고 주장한다.
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옵서버 팀은 최근 작성한 보고서에서 “지뢰는 새로 매설된 것이며 군사적 목적이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지뢰는 더 이상 단순한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현재진행형 무기이자 외교 분쟁의 핵심 사안이 됐다.
무고한 민간인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태국 사깨오(Sa Kaeo) 주에선 중국 국적자를 포함한 주민들이 지뢰로 인해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현지 주민 통차이 통몬은 “군대가 숲에 들어가지 말라고 하면 아무도 감히 그 경고를 무시하지 않는다”며 일상 속 공포를 전했다. 최근 태국 총리 아누틴 찬비라쿤은 부상 군인을 병문안하며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하겠다”고 눈물로 약속했다.
이처럼 태국과 캄보디아 두 나라 국경을 따라 늘어선 지뢰는 단순한 군사적 장치가 아니다. 과거의 전쟁이 현재까지 여전히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박하기 어려운 증거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