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본, 규제에도 중국 AI로 ‘우회 투자’ 확산

2025-12-12 13:00:01 게재

펀드·해외 SPV 통해 중국 AI스타트업 자금유입 지속

미국 정부의 대중 기술 제재가 이어지는 가운데, 미국 투자자들이 중국 인공지능(AI) 시장으로 다시 발길을 돌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 10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직접 투자가 어려워진 대신 홍콩·싱가포르·중동 등을 경유하는 간접·우회 투자 방식이 빠르게 확산하며 중국 AI 기업에 미국계 자금이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WSJ는 미국 벤처캐피털(VC)과 사모펀드(PE)가 홍콩·싱가포르에 운용사를 세운 뒤 이 법인을 통해 중국 AI 기업 지분을 확보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라고 전했다. 미국 규제를 직접적으로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중국 기업은 해외 자금을 유치할 수 있어,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방식은 중동 국부펀드나 영국계 자산운용사가 조성한 글로벌 AI 펀드를 통한 간접 투자다. 미국 연기금·대학기금·패밀리오피스 등이 이 펀드에 출자하면 실제로는 중국 AI 기업 성장에 자금을 제공하는 구조가 된다. WSJ는 “정치적 부담을 피하면서 성장성이 큰 시장의 지분을 확보하려는 수요가 뚜렷하다”고 분석했다.

기술 이전 위험이 낮은 산업용 AI 기업을 중심으로, 해외 특수목적법인(SPV)을 활용한 우회 투자도 늘고 있다. 제조업·물류·행정 서비스 등에서 당장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 많아 매출 발생 속도가 빠르고 규제 위험도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미국 자본이 중국 AI 기업을 주목하는 이유는 중국 시장 특유의 ‘속도감’이다. 중국은 지방정부와 국영기업을 중심으로 행정 서비스, 스마트 제조, 교통·물류 시스템 등에 AI 적용을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이로 인해 빅테크의 모델 경쟁보다 실제 매출이 발생하는 산업형 AI가 시장 성장을 이끌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WSJ에 따르면, 미국 벤처캐피털 업계 인사 레이몬드 라이는 컨퍼런스에서 “중국의 AI는 모델 개발보다 실사용 시장에서 더 빠른 성장이 나타나고 있어 투자자에게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의 규제 강화도 투자 방향을 재편하는 요인이다. 중국은 AI 모델 등록, 데이터 보안 심사 등 관리 체계를 강화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미국 투자자들은 플랫폼 기업보다 교육·의료·업무용 등 규제 민감도가 낮은 특화형 AI 솔루션 기업에 관심을 돌리고 있다.

워싱턴에서 대중 견제 기조가 이어지는 점도 우회 투자 확산에 영향을 준다. 미국 자산운용사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의 마크 로완 CEO는 “지정학적 긴장은 높지만 중국을 완전히 놓칠 수는 없다”며 중국 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이중적 태도를 지적했다고 WSJ는 전했다.

다만 리스크도 적지 않다. 미국 정부가 간접 투자까지 제재 범위를 넓힐 경우 회수 위험이 발생할 수 있으며, 중국 정부의 정책 변화가 산업용 AI 기업에도 예기치 않은 제약을 가할 수 있다. 해외 자본이 유입됐다는 이유로 기업이 추가 심사를 받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WSJ는 글로벌 자본의 중국 AI 투자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산업 현장에서 AI 도입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으며, 상용 속도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에서다. 홍콩계 사모펀드 벤처랩의 제이슨 차오는 “AI 승부는 결국 실제 사용 시장에서 갈린다”며 “중국 시장은 그 점에서 여전히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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