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클 실적 충격에도 미국 증시 신고가
브로드컴이 구원투수 노릇
실적 명암에 기술주 출렁
연준 미니QE에도 환호
11일(현지시간) 뉴욕증시는 지수별로 엇갈린 흐름을 보였지만, 전반적으로는 낙관론이 우세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0.2% 오른 사상 최고가로 마감했고, 다우지수와 러셀2000 지수도 장중 신고가를 경신했다. 반면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0.25% 하락하며 2만3593.86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에는 주요 지수 모두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며 기술주를 넘어선 광범위한 상승세를 보였다.
로이터는 나스닥의 발목을 잡은 것은 오라클의 실망스러운 실적 발표였다고 전하고 있다. 회사가 제시한 연간 비용 계획이 당초보다 150억달러 늘어난 데다, 부채를 통한 공격적인 AI 투자 확대 전략이 과거 닷컴버블을 연상케 한다는 불안이 겹쳤다. 오라클 주가는 10% 이상 급락하며 S&P500 구성 종목 중 최대 낙폭을 기록했고, 회사 채권 신용부담을 가늠하는 지표도 크게 튀었다.
하지만 장 마감 후 분위기는 급반전했다. 브로드컴이 매출 전망을 상향 조정하며 투자심리를 되살렸기 때문이다. 대형 클라우드 기업들의 AI 인프라 투자가 이어지면서 브로드컴 주가는 4월 저점 대비 이미 두 배 이상 올랐고, 낙관적인 실적 전망 발표 이후 시간외 거래에서 약 3% 추가 상승했다. 4130억달러 규모의 나스닥100 추종 ETF(QQQ)도 반등세로 돌아섰다. 하루 동안 주춤했던 기술주 전반에 다시 매수세가 붙은 것이다.
오라클과 브로드컴의 명암은 AI 시장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고 있음을 시사한다. 야데니 리서치는 “AI 경쟁이 군웅할거 양상으로 변하고 있다”며 “기존 대형 기술 기업들이 서로 영역을 침범하며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올해 S&P500의 가파른 상승을 견인해온 AI 대형주에 대한 경계심도 확산되고 있다. 11월 내내 시장 변동성을 키웠던 이른바 ‘AI 투자 회의론’이 되살아나는 모양새다. 일부 투자자들은 AI 대형주에서 러셀2000 같은 다른 업종으로 자금을 옮기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고 로이터는 분석했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완화적 정책도 투자심리를 뒷받침했다. 연준은 전날 세 번째 연속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제롬 파월 의장은 경기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유지하며 내년 추가 인하 가능성을 열어뒀다. 시장은 2026년까지 두 차례 추가 인하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으나, 연준의 새 점도표는 단 한 차례만을 제시했다.
연준은 금리 인하와 함께 월 400억달러 규모의 단기 재무부 채권(T-bills) 매입 계획도 발표했다. 금융시스템 내 은행준비금 부족을 막고 단기 자금시장의 금리 급등을 예방하겠다는 취지다.
연준 목표금리 범위가 흔들리지 않도록 방어막을 치는 기술적 조치지만, 일각에서는 사실상의 양적완화(QE)라는 해석도 나온다. 초단기물 중심이라 해도 결국 국채를 사들여 달러를 푸는 방식이라는 지적이다. 투자자들은 이에 환호했다고 로이터는 분석했다. 이날 비트코인도 소폭 상승세를 보였다.
11일 미국 증시는 기술주 내부의 명암이 뚜렷했지만, 전체적으로는 낙관론이 우세했다. 기술주 랠리에 뒤처져 왔던 대형 우량주와 소형주까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상승 대열에 합류한 것은 기술주 일변도에서 벗어나 시장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는 긍정적 신호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