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문화도시 노원의 발칙한 도전
며칠 전 직원이 이것 좀 보시라고 보내준 링크 제목은 '전재산 몰빵한 듯한 노원구 문화회관'이었다. 구마다 으레 있음직한 문화예술회관에서 올해 초에는 2000억원 짜리 잭슨 폴록의 그림이 전시되더니, 한국근현대명화전을 거쳐 이제는 고흐, 모네 등 인상파 컬렉션을 데려왔다고. 게다가 반 고흐의 ‘밀밭의 양귀비’는 국내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라고.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미쳐버린 노원구ㅋㅋㅋ’라며 게시된 글도 여럿 보였다. 조회수가 높은 쇼츠의 경우 70만회에 가까운 재생 횟수와 400개 이상의 댓글이 달렸다. 대체로 자치구 단위에서 이 정도의 이벤트를 추진한 것에 대해 놀라워했다.
못 믿겠다는 댓글에는 또 다른 이가 요즘 노원구 재밌는 게 많다고 설명도 해주고 예산 낭비라는 의견에 대해서는 또 다른 이가 예산은 이렇게 쓰는 게 맞다고 옹호해 주기도 했다. 영상과 글 내용 중 예술회관 개관 시기 같은 사소한 오류는 차치하고 몇 가지는 간략히 설명하고자 한다. 레플리카가 아니라 출처가 명확한 원화(原畫)가 맞다. 국립 아니라 구립이 맞고, 구에서 자체적으로 추진하는 문화정책이 맞다.
바로 이런 걸 하기 위해 예술회관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했고, 항온항습 기능과 도난 방지, 24시간 보안 체계는 대형 미술관 수준으로 갖췄다. 작품의 이송 과정에서는 경찰의 협조를 받기도 했다.
세계 역대급 명화 전시에 도전
또 몇 가지는 자세히 설명하고 싶다. 전시는 우발적으로 탄생한 게 아니다. 오히려 민선 7기 초선 때부터 했던 ‘예술의전당, 국립현대미술관까지 가지 않아도 우리 동네에서 고흐의 그림을 볼 수 있게 하겠다’는 약속을 이제야 지킨 것이다. 무리하게 돈만 퍼부은 게 아니라 착실하게 준비했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과 ‘테이트 미술관전’을 협업해 보면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고 꼭 필요한 일이라는 확신과 경험을 얻었다. 지속 가능하고 수준 높은 전시를 개최하기 위해 자치구 문화재단 수준에서는 이례적으로 전문 큐레이터를 채용했다.
올해 초 뉴욕의 거장들 전시에서 그 효과를 봤고, 한국근현대명화전은 국내 곳곳에 퍼져 있는 작품들을 섭외하러 필자가 직접 미술관장, 지자체장들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경험은 기획력이 되고, 노력은 네트워크로 돌아와 노원구가 앞으로 더 많은 이벤트를 추진할 수 있는 역량이 되었다.
미디어아트라든지 복제품 전시라는 쉬운 길도 있었지만 원화를 고집했다. 발터 벤야민의 이론에서처럼 복제품에는 존재하지 않는 원본성 그 자체인 ‘아우라’를 주민들에게 제공하지 못할 거라면 애초에 이런 노력을 기울일 필요도 없으니까.
이른바 ‘고급’ 문화예술 콘텐츠로부터 소외된 주민들이 생활권 내에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전시와 공연과 축제를 누리는 곳이 문화도시다. 문화예술이 갖는 중요성과 이점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은 지루하고 현학적인 일이 되겠지만 네티즌들은 ‘미쳐버린 ㅋㅋㅋ’라는 간단한 표현으로 노원구의 발칙한 도전을 칭찬하고 응원해 줬다. 덕분에 19일 개막하는 전시회의 사전예매가 벌써 3만6000매를 훌쩍 넘겼다.
전시와 공연 축제 누리는 '美親 노원' 꿈꿔
한때 문화예술 불모지에 가까웠던, 그러므로 더 필요했던 ‘미친 짓’은 주민들과 미술 애호가들의 마음에 작은 물결을 만들어 냈다. 관심이 관람으로, 관람의 경험이 실생활의 풍요로 이어져 물결은 파도가 되고 장대한 흐름을 형성한 '미친(美親) 노원'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