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풀리면 위기 커진다"…미 금융시장에 빨간불
크렌쇼 SEC 민주당 위원
“규제 완화 속도 지나쳐"
미국 금융규제 완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가운데, 이 같은 탈규제 흐름이 오히려 다음 금융위기의 충격을 키울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규제의 안전장치가 충분한 검토 없이 해체되면서, 위기가 발생할 경우 시장의 완충능력이 크게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 12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캐롤라인 크렌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은 최근 워싱턴 브루킹스연구소 연설에서 “탈규제를 향한 욕구가 탐욕적일 정도로 과도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2025년 들어 진행된 금융규제 완화를 “젠가 블록을 하나씩 빼내는 것과 같은 위험한 해체”라고 표현하며, 그 결과가 시장 전반의 불안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크렌쇼는 현재 SEC에 남아 있는 마지막 민주당 몫 위원이다. 그의 공식 임기는 지난해 끝났지만, 법에 따라 허용된 18개월 유예 기간에 따라 올해 말까지 직을 유지해 왔다.
그는 연설에서 SEC 규제 완화의 구체적 문제점도 열거했다. 기업공개(IPO)를 쉽게 한다는 명분 아래 투자자 권리가 약화되고, 기업 공시 요건이 느슨해지면서 시장 투명성이 후퇴하고 있다는 점을 첫 번째로 꼽았다. 여기에 일반 투자자들이 충분한 보호 장치 없이 사모시장으로 밀려나고 있으며, SEC의 제재와 과징금 규모도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크렌쇼는 “시장 구조의 근간이 서서히 침식되고 있다”며 “은퇴 자금을 안전하게 불릴 수 있도록 설계된 시장이 점점 카지노와 닮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카지노에서는 결국 하우스가 이긴다”며, 현재의 탈규제 기조가 장기적으로 투자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을 경고했다.
또한 그는 이러한 정책 변화가 충분한 비용·편익 분석이나 공개 의견 수렴 절차 없이 추진되고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이전 위원회가 쌓아온 규칙들이 단 한 차례의 공식적인 규정 제·개정 절차도 없이 빠르게 뒤집히고 있다”고 말했다.
연설 말미에서 크렌쇼는 현 상황을 1929년 대공황 이전과 비교했다. 그는 “정책 결정자들은 반복을 통해 자신들만의 진실을 만들지만, 시장은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조정에 나선다”며 “현재의 탈규제 기조가 타당했는지는 결국 시장이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 자본시장의 겨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가장 어두운 시기는 아직 앞에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FT는 크렌쇼가 올해 말 SEC를 떠나면, 사상 처음으로 소수당 위원이 한 명도 없는 SEC가 출범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내부에서 공개적으로 탈규제에 제동을 거는 목소리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발언은 단순한 개인 의견을 넘어 미국 금융시장에 대한 마지막 경고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