솎아내기냐 기강잡기냐…이 대통령 ‘생중계 업무보고’ 파장

2025-12-15 13:00:04 게재

전 정부 임명 인사에 송곳 질문 집중

공공기관장 물갈이 신호탄 해석도

행정가 출신 세밀한 질문에 관가 ‘긴장’

16일 복지부 등 2주차 보고 진행

이재명 대통령의 사상 최초 ‘생중계 업무보고’가 신선함을 준 동시에 논란도 부르는 등 파장이 크다. 기초자치단체장 출신 대통령답게 세밀한 질문으로 관가의 긴장도를 높인다는 평가도 있지만 이른바 ‘환단고기’ 논란과 ‘책갈피 달러’ 추궁은 정치권 논란으로 이어지며 여야 간 충돌을 불렀다. 민생과 정책을 논하는 자리가 정쟁의 소재가 됐다는 점에서 대통령실 내에서도 고민이 깊어지는 분위기다.

이재명 대통령, 과기부·개보위 업무보고 발언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2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통신부ㆍ개인정보보호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15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16일부터 2주차 업무보고 일정에 돌입한다. 이날 보건복지부를 시작으로 개시되는 업무보고는 19일 법무부 금융위 공정위 등의 보고로 이어지며 각종 굵직한 현안이 다뤄질 예정이다.

문제는 11~12일 이틀간 이어진 10시간이 넘는 생중계 업무보고의 파장이 여전하다는 점이다. 야당에선 이 대통령의 발언을 꼼꼼하게 짚으며 집중 공세에 나섰다.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의 업무보고에 대해 “갈라치기와 권력 과시의 정치 무대”라고 직격했다.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의 송곳 질문이 유독 전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에게 집중됐다고 본다. 12일 국민의힘 출신인 이학재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에 대한 질타나 ‘뉴라이트’ 논란이 있었던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 대한 타박에 정치적 배경이 깔려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여권 인사는 “이 대통령은 일 잘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다 자기 편으로 두지만 일 못한다 싶으면 쌀쌀해진다”면서 “논란이 된 인사들은 대통령이 보기에 업무 장악력이 의심스러워 지적한 사안으로 봐야 한다”고 두둔했다.

그러나 박성훈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된 국민의힘 3선 국회의원 출신 이학재 인천공항공사 사장을 향한 대통령의 질책은 국정 점검이라기보다 공개적 모욕주기에 가까웠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참 말이 기십니다’, ‘3년씩이나 됐는데 업무 파악을 그렇게 정확하게 못 하고 있는 느낌’, ‘저보다도 아는 게 없는 것 같다’, ‘지금 다른 데 가서 노세요?’?등 이 대통령이 국민 앞에서 생중계되는 공식 업무보고에서 쏟아낸 발언들은 하나같이 가관”이라며 “이런 언사가 과연 일국의 대통령이 보여야 할 품격과 태도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반발했다. 이 사장은 국민의힘 인천시장 후보로도 거론된다. 지방선거를 앞둔 이 대통령의 포석 아니냐는 반발이 거셀 수밖에 없는 셈이다. 대통령실에선 일단 정치적 논란에 선을 그었다. 환단고기 논란과 관련해 김남준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 대통령이 동의하거나 연구·검토를 지시한 게 아니다”고 밝혔다. ‘책갈피 달러’ 관련 이 사장과의 논란에 대해서도 “정상적인 질답 과정이었다”고 밝혔다. 이 사장이 야당 출신이라 심하게 대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선 “야당 출신이어서 고압적이거나 공세적인 자세를 취한 것 아니냐는 이런 의견이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바라보니 그렇게만 보이는 것”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그러나 관가에선 이 대통령의 질문 강도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며 공공기관장 물갈이 신호탄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중앙부처의 산하기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업무보고 때마다 산하단체를 일일이 부르며 하나씩 질문을 던지기 때문에 아무리 작은 기관의 기관장도 안심할 수 없는 분위기”라면서 “질문하는 사람이 다름 아닌 대통령이기 때문에 고난도 질문이 나왔을 때는 나가라는 뜻인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통령실에선 생중계 업무보고의 장점인 국민의 알권리 보장과 투명한 소통을 높이 평가하고 있지만 정쟁으로 이어지는 데 대해선 경계하는 분위기다. 김 대변인은 전날 브리핑에서 “지엽적인 부분이 과도하게 부풀려져서 해석이 된다든지 문제들은 있다”면서도 “대통령의 발언 등을 통해 국정운영철학을 설명 드릴 수 있는 장점이 분명히 있어서 생방송을 유지하며 단점들은 보완해 나가는 방식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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