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에너지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풀어야 할 숙제

2025-12-17 13:00:02 게재

기후에너지환경부 김성환 장관이 내년 5월까지 마련될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의 밑그림을 제시했다. 전력 수급의 안정성 확보와 더불어, 인공지능(AI)과 첨단산업에 대한 전력 공급, 그리고 재생에너지 중심 전환을 위한 설계도를 마련하는 것이 그것이다. 또한 수립 과정에서 ‘국민과 소통하며 함께 만드는 개방형 전기본’을 만들겠다고 방향을 밝혔다.

탄소중립 이행에서 ‘전기화’가 핵심 수단인 만큼 그 어느 때보다 전기본의 어깨가 무겁다. 본연의 목적인 안정적인 전력 공급뿐만 아니라 경제성 확보와 재생에너지 중심 전력 시스템 구축이라는 과제도 동시에 실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전력 설비 확대에 따른 주민 수용성 확보라는 네 번째 토끼도 잡아야 한다.

제12차 전기본은 지난 11월 이재명정부가 수립한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2035 NDC)를 뒷받침하는 첫 번째 법정 계획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2035 NDC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35년까지 온실가스를 2018년 배출량 대비 53~61% 줄여야 한다.

전기본은 산업 부문에 이어 가장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발전 부문의 감축 목표를 이행하기 위한 디딤돌을 설계한다는 점에서 이재명정부 기후변화 정책의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

2040 탈석탄 구현 구체적 로드맵 필요

가장 시급한 현안은 국정과제인 ‘2040년 탈석탄’의 구현이다. 전국적으로 석탄발전소는 총 61개가 운영 중인데, 이 중 40개 발전소에 대한 전환 계획만 수립되어 있다. 문제는 2010년대 이후 건설된 석탄발전소들은 고려 대상에서 제외되어 2038년 기준으로 여전히 50% 이상이 남아있게 된다는 점이다. 2035 NDC를 달성하려면 ‘2040년 탈석탄’ 공약의 조기 실현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제12차 전기본에서 구체적인 로드맵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석탄발전이 대부분 천연가스로 전환되는 점도 문제다. 제11차 전기본에 따르면 총 61기의 석탄발전 중에서 37기가 천연가스로 대체될 예정인데, 천연가스는 수입 가격이 높아 전기요금 상승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과잉 투자도 문제다. 2036년 기준 천연가스 발전소의 이용률은 약 11%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10대 중에서 9대는 실제 가동을 멈춘다는 의미다. 천연가스 발전소는 돈 먹는 하마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윤석열정부가 남기고 간 폭탄 중의 하나인 신규 핵발전소 2기 건설 이슈도 뜨거운 쟁점이다. 일단 김성환 장관은 대국민 토론회와 여론조사로 진행하는 ‘공론화’를 통해 결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구체적인 계획은 알려진 바 없으나 내년 5월까지 최종안을 수립하겠다는 정부의 일정을 비추어볼 때, 이러한 ‘공론화’ 과정이 내실 있게 진행되리라는 기대는 하기 어렵다.

신규 핵발전소 건설에 대해 공론화가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어떤 방식이 적합한지에 대한 논의가 우선되어야 한다. 지난 문재인정부에서 진행되었던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결과를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당시 500명의 시민참여단이 3개월 동안 숙의와 토론을 통해 합의를 도출했는데, 그 결과는 ‘중단되었던 건설 공사는 재개하되 앞으로는 원전 비중은 축소해야 한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부산ᆞ울산ᆞ경남의 지역주민과 미래세대 참여가 배제되고 검증되지 않은 산업계 주장이 난무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었지만 ‘원전 축소’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한 것은 그나마 숙의민주주의의 성과였다. 백번 양보해서, 약 10년이 지났으니 다시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한두 차례의 토론회와 여론조사로 핵발전소 건설을 결정하는 방식은 현 정부가 지향하는 ‘국민주권과 민주주의의 확립’과 어울리지 않는다.

숙의민주주의가 정책 수립 핵심가치 되길

마지막으로 미래 전력수요가 부풀려지지 않도록 정확한 전망과 과감한 수요관리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동안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라는 명분 아래, 수요 전망을 뻥튀기하고 이를 대형 발전소 건설로 메꾸는 악습이 반복되어 왔다.

그 과정에서 설치되는 송전탑들은 지속적으로 지역갈등의 불씨로 작동하고 있다. 효율 개선과 수요 반응 확대를 통해 수요 증가를 최소화하는 한편, 전력 수요를 수도권이 아닌 지역으로 분산시키기 위한 ‘지산지소’ 전략도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기후부가 ‘국민과 소통하며 함께 만드는 개방형 전기본’을 만들겠다고 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지금까지 밀실에서 소수의 관료와 전문가가 결정해 왔던 방식을 바꾸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투명한 정보 공개와 더 많은 토론, 그리고 숙의민주주의가 제12차 전기본 수립의 핵심가치로 설정되기를 바란다.

권경락 정책활동가 기후환경단체플랜1.5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