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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잃은 미국, 트럼프 집권 1년도 안돼 드러난 취약점

2025-12-18 13:00:01 게재

2025년은 2차세계대전 이후 수립된 80년의 장기 국제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한 해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동아시아와 유럽의 전쟁에 적극 개입해 승리를 이끌며 초강대국으로 등장한 미국은 유럽에는 나토, 그리고 동아시아에는 다수의 양자동맹이라는 두 날개를 달고 세계를 지배해왔다. 그런데 올해 두 번째 집권에 성공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 두 날개를 본격적으로 몸통에서 떼어놓기 시작했다.

지난 80년 동안 미국이라는 몸통은 동아시아와 유럽이라는 날개를 활용해 지구촌 넓은 지역에 지정학적 안정과 경제발전을 추동해 왔다. 이런 국제질서는 미국을 중심에 두면서 형식적 평등과 실질적 위계를 잘 아울러 그 효율성을 증명했다. 비판적 국제정치학의 헤게모니의 개념은 힘을 통한 원초적 지배를 넘어 상대방의 동의를 얻어내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지배하는 이런 관계를 잘 표현한다.

자유주의 국제정치학에서는 군사력이나 경제력과 같은 하드파워를 넘어 문화와 교육, 과학기술 등의 소프트파워를 통해 미국이 세계의 자발적 추종을 도출해낸다고 지적했다. 헤게모니가 미국의 지배 현상에 초점을 여전히 맞췄다면, 소프트파워는 미국의 매력에 다른 나라들이 끌리는 모습을 강조한 셈이다.

트럼프, 중국과의 경쟁에서 스스로 우위 포기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에서 유럽과 동아시아는 가장 성공적인 동맹이고 동반자였다. 미국-유럽, 또는 미국-동아시아 관계가 얼마나 불평등한 지배관계인지, 아니면 상당히 대등한 협력관계인지는 학계의 오랜 논쟁거리다. 2025년의 중요한 변화는 이런 장기적 관계가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되었다는 사실이다. 전통적 동맹국과 적대국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국제관계를 트럼프 개인의 충동적 이익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트럼프 세상’에서 전통과 역사, 제도와 약속은 아무런 가치를 지니지 못하고 사라지거나 무시당한다. 모든 관계를 주고받는 ‘거래’로 보면서 트럼프의 존재감을 치켜세워줄 ‘딜(deal)’의 기회로 만든다.

서구의 장기적 경제발전을 ‘거래비용의 절감’이라는 차원에서 분석한 더글러스 노스(197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의 주장을 트럼프는 당연히 들어보지 못했을 터다. 시장이나 소유권과 같은 제도는 행위자들 간의 거래비용을 약간 낮춰주지만 장기적으로 이런 차이가 누적되면 큰 변화를 낳는다는 것이 노스의 설명이다. 외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장기적 조약이나 동맹은 약속을 통해 미래를 계획하고 거래 비용을 줄이는 안정과 질서, 즉 평화에 요긴한 장치다.

스탠포드대의 아브너 그라이프도 장기적 관점에서 유럽의 경제발전에서 ‘익명성에 기초한 제도’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중세의 거래와 무역은 동족이나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끼리 이뤄졌으나 점차 시장이라는 제도를 통해 누구에게나 열린 관계를 만들어 발전을 가져왔다고 강조한다. 특정인이나 특정 국가와 매번 딜하는 것보다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적 규칙을 만들어야 호혜적 발전이 수월해진다는 진리다.

제도주의 경제학자 노스나 그라이프의 주장은 비판적 또는 자유주의적 국제정치학과 같은 맥락에서 트럼프식 국제질서 파괴 행위에 경고장을 던진다.

미국은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세계적 차원에서 예측이 어느 정도 가능하고 개방적이며 상당히 평등한 질서를 구축한 세력이다.

국제질서 파괴행위에 던져진 경고장

하지만 미국은 이제 두 날개를 동시에 잃은 몸통이 되었다. 미국이 중국과의 경쟁에서 가졌던 가장 큰 우위를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중국이 믿을 만한 동맹이 없었던 반면 미국은 유럽과 동아시아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거대한 동맹 연합이었다. 중국은 기껏해야 러시아처럼 훨씬 규모가 작은 종속 세력이나 마지못해 끌려가는 주변 중소국이 있을 뿐이었다.

트럼프의 착취적이고 도발적인 태도는 두 날개가 독립하는 꿈을 꾸도록 만들었고 몸통과 날개 사이의 유기적 관계나 신뢰를 순식간에 절단해 버렸다. 그 결과 트럼프의 미국은 집권 1년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매우 취약한 존재로 돌변했다.

사람이건 국가건 마구 대하다 보면 항상 쉽고 빠르게 배신당할 위험에 노출된다. 미국의 미래에 드리워진 그림자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 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