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EUV 노광장비 시제품 완성

2025-12-18 13:00:02 게재

ASML 출신 엔지니어들 역설계로 성공 … 화웨이 주도 국가 총력 프로젝트 일환

인포그래픽=연합뉴스 ‘하이-NA EUV’의 모습에 오성홍기 AI 작성
중국 선전의 한 극비 연구시설에서 중국 과학자들이 미국이 수년간 저지하려 애써온 기술적 돌파구를 눈앞에 두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인공지능(AI)과 스마트폰, 서방 군사 무기의 핵심 부품인 반도체를 만드는 데 필요한 최첨단 노광장비의 시제품을 완성해 시험 가동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1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 장비는 올해 초 완성됐으며, 공장 한 층을 통째로 차지할 만큼 거대한 규모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L 출신 엔지니어들이 중심이 돼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역설계해 만든 것으로 복수의 소식통이 전했다.

EUV 장비는 반도체 기술 냉전의 핵심 무기다. 극자외선을 이용해 실리콘 웨이퍼에 회로를 새기는 이 기술은 지금까지 서방이 사실상 독점해왔다. 회로가 미세할수록 칩 성능은 비약적으로 높아진다.

중국의 시제품은 이미 극자외선을 안정적으로 생성하는 데 성공했지만, 아직 실제 작동하는 칩을 생산하는 단계까지는 도달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ASML 최고경영자 크리스토프 푸케가 지난 4월 “중국이 이 기술을 확보하려면 수년, 어쩌면 수십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한 것과 비교하면, 중국의 진척 속도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라고 로이터는 평가했다.

중국은 중고 시장에 유통되는 구형 ASML 장비 부품을 활용해 시제품을 구축했으며, 정부는 2028년까지 실제 칩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성과는 반도체 자립을 목표로 6년간 추진해온 국가 주도 프로젝트의 결실이다. 딩쉐샹이 이끄는 공산당 중앙과학기술위원회 산하에서 진행 중이며, 화웨이가 전국의 기업과 연구기관, 수천 명의 엔지니어를 연결하는 핵심 조정자 역할을 맡고 있다. 내부 관계자들은 이를 '중국판 맨해튼 프로젝트'에 비유했다.

현재 EUV 기술을 상용화한 기업은 네덜란드 ASML이 유일하다. 한 대당 약 2억5000만달러(약 3675억원)에 달하는 이 장비는 엔비디아, AMD의 설계로 SMC, 인텔, 삼성전자가 생산하는 최첨단 칩 제조에 필수적이다. ASML은 2001년 첫 시제품을 만든 뒤 2019년에야 상업용 칩 생산에 성공했다. 20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다는 얘기다.

미국은 2018년부터 네덜란드에 압력을 가해 ASML의 EUV 장비가 중국에 판매되지 않도록 막았고, 2022년에는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를 대폭 강화했다. 구형 DUV 장비까지 규제해 중국의 기술 수준을 최소한 한 세대는 뒤처지게 만들려 했다.

이 프로젝트에 합류한 ASML 출신 엔지니어들은 가명 신분증을 받았다. 자신들이 무엇을 만드는지조차 발설해선 안 된다는 지침도 받았다. 팀에는 최근 은퇴한 중국계 ASML 엔지니어와 과학자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고 전해진다.

ASML의 최신 EUV 장비는 길이가 스쿨버스만 하고 무게는 180톤에 이른다. 중국과 서방 간 기술 격차가 가장 크게 드러나는 지점은 EUV 노광장비의 핵심인 초정밀 광학 시스템이다. EUV 장비는 초당 5만번의 레이저를 액체 주석에 쏘아 20만도에 달하는 플라즈마를 만들고, 이를 수개월에 걸쳐 제작한 거울로 집속한다. 이는 ASML의 협력사인 독일 자이스가 사실상 독점 공급하고 있다.

중국과학원 산하 창춘광학정밀기계물리연구소는 올해 초 EUV 광원을 광학계에 통합하는 데 성공했지만, 정밀도는 여전히 개선이 필요하다. 중국은 구형 장비에서 부품을 회수하거나 중고 시장을 통해 우회적으로 공급망을 확보하고 있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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