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브릭스, 40억달러 사모투자 유치
180조원 가치평가 … 초대형 IPO 기대 고조
비상장 상태서 몸집 키우는 유니콘 확산
미국 데이터 분석·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기업 데이터브릭스가 대규모 투자 유치에 나서며 기업가치를 크게 끌어올렸다. 상장을 서두르기보다 사모펀드와 대형 기관투자자 자금을 활용해 비상장 상태에서 성장을 이어가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16일 보도에 따르면 데이터브릭스는 최근 40억달러가 넘는 자금을 조달하는 시리즈L 투자를 진행 중이며, 이를 기준으로 한 기업가치는 1340억달러로 평가됐다. 이는 올여름 직전 투자 라운드보다 약 34% 높은 수준이다. 달러 환율을 1달러당 1480원으로 환산하면 약 198조원에 이른다.
통상 스타트업의 투자 유치는 시리즈A, B처럼 알파벳 순으로 단계가 올라간다. 시리즈L은 알파벳상 열두 번째 단계로, 이미 수차례 대규모 투자를 거친 성숙 단계의 기업임을 뜻한다.
과거에는 이 정도 단계의 기업이 상장을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에는 사모펀드와 연기금, 대형 자산운용사 자금이 대거 유입되면서 기업공개(IPO) 없이도 수십억달러 규모의 자금 조달이 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공개시장 대신 비상장 상태를 유지하며 성장 속도와 경영 전략을 조절하는 선택을 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데이터브릭스는 기업용 데이터 분석과 AI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업체로, 10월 말 기준 연간 매출 환산액이 48억달러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이번 투자에는 인사이트파트너스, 피델리티 매니지먼트앤드리서치, JP모건자산운용 등이 참여했다.
알리 고드시 데이터브릭스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IPO 시점에 대해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WSJ에 2021~2022년 증시 조정 국면에서 상장 기업들이 대규모 인력 감축에 나섰던 점을 언급하며, “그런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면 피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처럼 대형 기술 기업들이 공개시장 대신 사모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며 비상장 상태로 성장하는 흐름은 최근 몇 년 사이 뚜렷해졌다. 분기 실적 공개 부담과 주가 변동성을 피할 수 있다는 점도 기업들이 IPO를 미루는 요인으로 꼽힌다.
다만 월가에서는 IPO 시장에 대한 기대가 점차 살아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WSJ 17일 보도에 따르면 의료용품 업체 메드라인은 최근 나스닥 상장을 통해 약 63억달러를 조달하며 2021년 이후 최대 규모의 IPO를 기록했다.
공모가 29달러로 출발한 주가는 첫 거래일에 40% 넘게 상승했다. 투자은행들은 메드라인의 흥행이 기관투자자들의 위험 선호 회복을 보여주는 신호로 작용하고 있으며, 대형 상장 물량을 다시 소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우고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일부 은행들은 대형 비상장 기업들을 상대로 상장 자문 논의를 재개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장에서는 IPO 창구가 다시 열릴 수 있다는 기대도 조심스럽게 확산되고 있다.
WSJ는 스페이스X, 인공지능 기업 앤트로픽, 미국의 주택금융 공기업 패니메이와 프레디맥 등이 2026년을 전후해 상장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상장을 미뤄온 초대형 비상장 기업들이 대거 대기하고 있는 만큼, 시장 여건이 갖춰질 경우 IPO 일정이 한꺼번에 몰릴 가능성도 거론된다. 메드라인의 성과는 이런 ‘대기 중인 대형 IPO’들의 출발 신호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월가의 시선을 끌고 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