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정부, 고려아연 투자에 ‘지분 인수권’ 요구

2025-12-22 07:20:57 게재

핵심광물 전략 본격화

자국 기업 이어 한국 기업에도 워런트 적용

공급망 안보 강화 의지

미국 정부가 고려아연의 미국 현지 제련소 프로젝트에 투자하면서 지분 인수권(워런트)을 확보한 사실이 알려지자, 과거 자국 핵심광물 기업들에 적용했던 투자 방식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미국이 전략 광물 공급망을 국가 안보 차원에서 관리하기 위해 투자와 동시에 권리를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구조를 한국 기업에도 동일하게 적용했다는 평가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최근 핵심광물 공급망 구축을 위해 직접 투자와 정책적 지원을 병행하면서, 투자 대상 기업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 워런트를 설정하는 방식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단순한 재정 지원을 넘어, 장기적 협력과 사업 성공에 따른 ‘성과 공유’를 제도화한 구조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미국 에너지부(DOE)의 리튬 아메리카스 투자 건이 꼽힌다. DOE는 1차 대출을 추진하면서 리튬 아메리카스와 리튬 아메리카스-GM 합작회사(JV)의 지분 각각 5%에 해당하는 보통주를 주당 1센트에 인수할 수 있는 워런트를 확보했다. 여기에 1억2,000만 달러 규모의 대출 준비금 적립과 GM과의 오프테이크 계약 수정 등 추가 지원도 병행했다.

미국 전쟁부(DOW)와 트릴로지 메탈스 간 계약 역시 유사하다. 미 연방정부는 트릴로지 메탈스 주식 약 820만 주를 단위당 2.17달러에 매입했으며, 향후 알래스카 엠블러 접근 프로젝트 완공 시 주당 1센트에 보통주를 인수할 수 있는 워런트를 포함시켰다.

이 같은 방식은 고려아연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미국 정부는 고려아연의 미국 제련소 운영법인 지분을 주당 1센트(약 14원)에 최대 14.5%까지 인수할 수 있는 워런트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아연 측은 “다른 핵심광물 기업들과 체결한 조건과 유사한 수준”이라는 입장이다.

시장에서는 워런트 가격 자체보다는 그 구조에 의미를 두고 있다. 미국 정부는 초기 단계에서 자금 지원과 저리 대출, 인허가 패스트트랙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면 워런트를 행사해 투자에 대한 ‘대가’를 회수한다. 사업 성공 가능성에 대한 일종의 베팅이자, 성공 시 보상을 제도화한 장치라는 분석이다.

특히 고려아연 계약의 경우 추가로 최대 20%의 지분을 인수할 수 있는 조건이 포함돼 있어 파격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제련소 운영법인의 기업가치가 23조 원을 넘을 경우, 해당 가치에 상응하는 금액을 지급하고 지분을 인수하는 구조다. 약 11조 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감안하면, 미국 정부가 기업가치의 두 배 이상 상승을 기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투자는 미국이 추진 중인 전략 광물 공급망 협력체 ‘팍스 실리카(Pax Silica)’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팍스 실리카는 한국, 일본, 호주, 영국 등 8개 동맹국과 함께 반도체와 핵심 광물 공급망을 중국 의존에서 벗어나 안정적으로 구축하기 위한 다자 협력 구상이다.

제이콥 헬버그 미국 국무부 경제담당 차관은 최근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미국의 재산업화를 통해 경쟁력을 유지하려 한다”며 “이 과정에서 고려아연과의 협력은 매우 중요한 이정표”라고 강조했다. 그는 “팍스 실리카를 통해 동맹국들이 경제안보 분야에서 협력하며,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센터, 그리고 클락스빌의 고려아연 제련 시설 같은 프로젝트에 공동 투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정부의 이번 행보는 핵심 광물을 둘러싼 글로벌 공급망 경쟁이 단순한 산업 정책을 넘어, 안보와 외교 전략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평가된다.

정석용 기자 syjung@naeil.com
정석용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