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각실패 위기 ‘홈플러스’ 공적개입 절실
인수 희망자 없어 청산 가능성 … 노동자·협력업체·투자자 피해 우려
홈플러스의 유동성 위기가 전면화되면서 구조조정이 사실상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점포 폐점 검토와 임금 분할 지급, 납품대금 지연이 동시에 나타나면서 사태는 단순한 기업회생을 넘어, 대형 유통기업 구조조정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정책·제도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정부가 유지해 온 ‘시장 자율’ 기조가 한계에 봉착했다는 평가와 함께 공적 개입과 구조조정 특별법 필요성까지 거론된다.
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지난 3월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초기에는 우선협상자를 지정하는 ‘스토킹 호스’ 방식으로 매각을 추진했지만 적합한 인수 후보를 찾지 못했고, 공개입찰로 전환한 뒤에도 본입찰 참여 기업은 없었다. 업계는 인수 매력 저하의 원인으로 △대형마트 업황 부진 △수천억원대 구조조정 비용 △채권자·노조·입점업체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꼽는다.
◆현장으로 번진 재무 압박 = 재무 압박은 운영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임차료와 전기료 등 점포 고정비만 매달 수백억원에 이르는 가운데, 납품 대금과 공과금 부담까지 겹쳐 현금 흐름이 급격히 악화됐다. 최근에는 수만 명에 달하는 직원 급여가 분할 지급되면서 단기 운영자금조차 버거운 상황이다.
점포 구조조정도 가시화됐다. 홈플러스는 현금 흐름 악화를 이유로 폐점을 보류해온 15개 점포 가운데 가양·장림·일산·원천·울산북구점 영업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 대형마트 한 곳당 수백 명의 직·간접 고용과 수십 개 협력업체가 연결돼 있어, 점포 5곳만으로도 수천 명 규모의 고용과 지역 상권에 큰 충격이 예상된다.
협력업체와 입점 중소기업 피해도 확인된다. 중소기업중앙회의 ‘2025년 대형마트 입점 중소기업 거래 실태조사’에 따르면 홈플러스를 주거래처로 둔 중소기업의 41.6%가 지난해 매출이 전년보다 감소했다고 응답했다. 회생절차 장기화로 대금 정산이 늦어지면서 자금 조달 비용이 늘고, 거래 축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공급망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구조조정 충격은 실물 영역에 그치지 않는다. 홈플러스 카드대금 유동화 전자단기사채(ABSTB·전단채)에 투자한 개인 투자자들도 손실 위험에 노출돼 있다. 단기·저위험 상품으로 인식됐던 전단채가 기업회생 절차와 맞물리며 상환 불확실성이 커지자, 금융 영역에서도 구조조정 비용이 투자자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노동자와 협력업체, 전단채 투자자까지 손실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는 구조다.
이의환 전단채 비대위 집행위원장은 “전단채를 설계·판매한 증권사와 금융당국이 피해를 외면하고 있다”며 “금융시스템을 믿고 투자한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당국과 정부 차원의 대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매각 가능성 점점 낮아져 = 인수·매각 전망은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통매각 가능성에 회의적이다. 수익성 있는 점포와 핵심 상권 중심의 분할 매각 시나리오가 거론되지만, 분할 매각은 고용승계 기준이 불명확하고 입점업체 계약 문제와 지역상권 붕괴 위험을 동반해 사회적 비용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쿠팡·농협 인수설도 불확실성을 키운다. 일부에서는 농협의 농산물 유통망과 대형마트 결합을 통한 시너지를 주장하지만, 농협은 자체 유통 계열에서 수백억원대 적자가 누적돼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며 인수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실현 가능성이 낮은 인수설이 반복될수록 회생 절차 신뢰도만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대형마트가 전반적으로 점포를 줄이는 국면에서 홈플러스 인수는 재무 부담과 사회적 책임을 동시에 떠안는 고위험 거래”라며 “매각을 성사시키려면 정부나 정치권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회생절차 초기에 고용을 유지하며 경쟁력 없는 매장을 정리하는 구조조정이 이뤄졌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 있다”며 “이를 가로막았던 정치권이 이제라도 정부가 나설 수 있도록 압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적 개입 논쟁 본격화 = 공적개입 요구도 커지고 있다. 정부는 ‘특정 기업에 대한 선제적 개입이나 지원은 시장 왜곡과 형평성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원론적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고용과 협력업체 피해 등 사회적 파급 효과는 관계 부처가 예의주시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MBK·홈플러스 사태 해결 태스크포스(TF)’는 추가 인수자가 없을 경우 연합자산관리회사(유암코)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 구조조정 전문 공적기관이 부실채권 정리 과정에 참여해 인수 환경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TF 내부에서는 유암코가 채무 구조를 조정하고 정책금융기관과 농협 등이 금융 지원과 경영 안정 역할을 분담하는 ‘공공 주도 통합 회생안’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공적 자금 투입에 따른 도덕적 해이와 형평성 논란은 부담으로 남지만, 시장 자율에만 맡길 경우 고용·협력업체·전단채 피해가 막대한 사회적 비용으로 확대될 수 있어 정부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홈플러스 사태는 결국 누가 인수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조정의 비용과 책임을 누가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에 대한 시험대라는 평가가 나온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