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입법 속도전 후폭풍’ 거세다
“법사위 통과 후 완전히 다른 법안 만들어”
상임위 숙의 부재로 위헌 논란·진보진영 반발
진보당도 대통령 재의요구권 행사 요구 나서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속도전이 후폭풍에 휩싸였다.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과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국회 상임위, 법사위에서 주도적으로 처리한 민주당이 본회의 상정 직전에 일방적인 수정안을 통과시켜 논란이 커지는 분위기다. 이 법안들은 위헌 논란과 함께 과잉입법으로 ‘입틀막’법이라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국민의힘뿐만 아니라 진보당도 이재명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 행사를 주문했다. 위헌법률심판청구도 나설 기세다.
26일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민주당이 여권에 포함돼 있는 조국혁신당과 손을 잡고 상임위 소위, 전체회의,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 역시 법사위 소위와 전체회의를 민주당 주도로 넘어섰다. ‘연내 본회의 처리 목표’를 맞추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고는 본회의 상정 직전에 민주당 단독으로 핵심 조항을 손댔다. 사실상 ‘상임위 중심주의’가 무력화된 셈이다. 이 과정에서 시민단체 등의 반발도 거셌지만 무시됐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24일 두 법안 모두 본회의 수정안으로 처리한 민주당을 향해 “몹시 나쁜 전례”라며 “(이는) 법사위 설치 목적에 반할 뿐 아니라 국회라는 입법기관 자체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본회의 상정 전에 재수정된 법안은 법사위 심사를 끝낸 법안과 ‘완전히 다른 법안’이 돼 버렸다.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 수정안은 법사위에서 통과된 ‘내란전담재판부 구성’의 골자가 달라졌다. 수정되기 전 법안은 법무부 장관과 헌법재판소사무처장, 각급법원판사회의가 추천한 위원들이 ‘전담재판부후보 추천위원회’를 꾸려 재판부 판사를 추천하도록 했다. 하지만 본회의 상정 전에 민주당은 ‘전국법관대표회의와 판사회의로만 후보자추천위를 구성’하도록 수정했다. 그러고는 2차 수정에서는 ‘내란전담재판부를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등법원에 각각 2개 이상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면서 ‘서울중앙지방법원과 서울고등법원의 판사회의가 전담재판부의 수, 판사의 요건 등 구성 기준을 마련하고 법원의 사무분담위원회가 그 기준에 따라 판사를 배정해 판사회의에 보고하면 판사회의가 의결한 후 해당 법원장이 그 의결에 따라 전담재판부 판사를 보임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법안 골격을 모두 갈아치운 셈이다.
정보통신망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단순한 오인·착오나 실수로 생산된 허위 정보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지적에 본회의 상정 직전에 ‘손해를 가할 의도 또는 부당한 이익을 얻을 목적’이라는 규제 요건을 추가했다. 공공 이익을 위한 정당한 비판과 감시 활동을 방해하려는 목적의 손해배상 청구는 제한한다는 단서도 달았다. ‘사실 적시 명예훼손’은 상임위(과방위) 단계에서 현행법의 관련 조문을 삭제했다가 최종안에서 되살아났다.
국민의힘뿐만 아니라 진보당 등 진보진영 정당에서도 이재명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주문하고 나섰다. 국민의힘 등은 위헌법률심판 청구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 대통령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삭제’를 주문한 바 있어 재의요구권 행사 여부에 관심을 끌고 있다. 민주당은 형법상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와 속도를 맞추기 위한 것으로 조만간 형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이를 포함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도 통과시키겠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부실한 속도전’이었음을 시인한 대목으로 읽힌다.
지난 9월 국회 특별위원회 활동이 끝난 뒤에도 위증을 고발할 수 있도록 하는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증감법) 개정안도 본회의 직전에 수정한 후 민주당 주도로 통과시켰다. 당초 민주당은 본회의 상정 직전 법제사법위원장에게 ‘위증 고발권’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개정안을 수정했다가 국회의장을 고발 주체로 원상복구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상임위와 법사위를 거치면서 위헌소지나 논란의 여지를 없애는 게 일반적이고 국민들도 법사위를 통과하면 법안이 완성된 것으로 보고 있는데 본회의 상정 전에 법의 골격을 바꿔버리고 조항을 뜯어고쳐 수정안을 만들고 통과시키는 것은 법사위를 넘어 국회에 대한 신뢰를 크게 훼손하는 부분”이라며 “국회의장도 이 부분을 심각하게 본 것”이라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