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투자 광풍 속 ‘현금 방패’ 쌓는 스타트업들

2025-12-29 13:00:01 게재

수익화 지연에 거품 우려

투자 유치로 ‘버티기 전략’

실리콘밸리의 주요 인공지능(AI) 스타트업들이 2026년을 대비해 대규모 자금을 미리 확보하며 ‘현금 방패’를 쌓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 29일 보도에 따르면, 2025년 한 해 동안 미국의 대표적인 AI 비상장 기업들이 조달한 자금은 1500억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2021년 기록한 이전 최고치 920억달러를 크게 웃도는 규모다.

벤처투자자들(비상장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전문 투자자)은 AI 인프라 투자에 대한 회의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호황기에 자금을 충분히 확보해 재무 구조를 두텁게 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오픈AI, 데이터브릭스, 스페이스X에 투자한 벤처캐피털 코튜(Coatue)의 파트너 루커스 스위셔는 “시장이 허락할 때 요새 같은 재무상태표를 만들어야 한다”며 “2026년에는 예상치 못한 충격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초대형 투자 유치가 기록을 끌어올렸다. 오픈AI는 일본 소프트뱅크가 주도한 410억달러 규모 투자를 유치했고, 앤스로픽은 9월에 130억달러를 조달했다.

메타는 데이터 라벨링 업체 스케일AI에 140억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퍼플렉시티, 애니스피어, 싱킹머신스랩 등도 짧은 간격으로 여러 차례 자금 조달에 나섰다.

이 같은 움직임의 배경에는 비용 부담이 있다. 최첨단 AI 모델을 개발하려면 막대한 연산 능력과 고가의 반도체가 필요하다. 오픈AI의 2025년 매출은 약 130억달러로 추정되지만, 모델과 인프라 개발 비용으로 매년 수십억달러의 손실을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실물 경제에서의 성과는 아직 기대에 못 미친다. 최근 로이터통신은 다수 기업들이 생성형 AI를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수익 개선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장조사업체 포레스터리서치 조사에서는 지난 1년간 AI로 이익률이 개선됐다고 답한 기업이 15%에 그쳤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진행한 조사에서도 AI가 광범위한 가치를 창출했다고 본 응답은 5%에 불과했다. 포레스터리서치의 브라이언 홉킨스 애널리스트는 “기술 변화 속도에 비해 조직과 사람의 변화가 훨씬 느리다”며 2026년 기업들의 AI 지출 중 약 25%가 연기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처럼 수익화 지연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2026년 AI 산업은 양극화가 심화될 전망이다. 자금을 충분히 확보한 대형 AI 기업들은 인수·합병 기회를 노리며 버티기에 들어가는 반면, 자금력이 약한 중소 스타트업들은 투자 위축의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벤처캐피털 센티널글로벌의 창업자 제러미 크랜츠는 “공개시장이 흔들리는 순간 대형 비상장 기업들이 공격적으로 인수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FT는 AI가 약속했던 혁신이 현실로 이어지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가운데, 2026년은 기술 경쟁만큼이나 자금력과 생존 전략이 성패를 가르는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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