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반도체가 뜨거운 것을 싫어하는 이유
최근의 인공지능(AI) 열풍은 기술적 혁신을 넘어 에너지산업 지형까지 흔들고 있다. GPU나 HBM 같은 첨단 반도체 확보 경쟁이 1차전이었다면 이제는 이들을 가동하기 위한 막대한 전력 확보가 2차전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나라에 도입 예정인 약 25만장의 GPU를 가동하기 위해 필요한 0.5~0.8기가와트의 전력은 원자력발전소 하나의 발전량에 근접하는 양이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이러한 데이터 센터를 세계 곳곳에 건설한다면 이는 지금까지 인류가 예상하지 못한 수준의 전력수요를 의미한다. 안정적인 전력 확보가 AI 기술패권경쟁의 필수조건이 된 셈이다.
필자는 평소 반도체 물리학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컴퓨터는 전열기다”라는 농담을 던지곤 한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농담이 아닌 물리적 실체다. AI 데이터센터나 개인용 PC의 반도체 칩으로 들어간 전기는 최종적으로 모두 열에너지로 변환되어 방출된다.
우리는 뜨거운 컴퓨터를 식혀야 한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왜 식혀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해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자동차의 내연기관이나 제트엔진은 고온일수록 효율이 높아지기 때문에 재료가 녹지 않는 한계까지 온도를 높여 설계한다. 반면 반도체는 칩이 녹거나 타버릴 정도의 고온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정 온도 이상이 되면 동작을 멈춘다. 반도체 내부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금속과 반도체 구분은 ‘온도 저항 변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현대 실험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이클 패러데이는 1833년 온도를 변화시키며 물질의 전기적 성질을 관찰하던 중 특이한 현상을 발견한다. 황화은(AgS) 결정의 온도를 높였더니 전기가 더 잘 통하는(전기 저항 감소)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구리 같은 전도체는 온도가 오르면 원자의 진동이 심해져 전자의 이동을 방해하므로 전기저항이 커진다. 하지만 패러데이가 관찰한 이 물질은 정반대의 특성을 보였다. 이것이 인류가 최초로 반도체의 고유한 특성을 관찰한 순간이었다. 오늘날에는 금속과 반도체를 구분할 때 ‘온도에 따른 저항 변화’를 기준으로 삼는다. 온도가 상승할 때 저항이 커지면 도체, 반도체는 반대로 저항이 작아진다.
패러데이의 발견은 반도체가 왜 열에 취약한지를 설명하는 첫번째 단서가 된다. 반도체에 전류가 흐르면 열이 발생하고, 온도가 올라가면 저항이 낮아진다. 저항이 낮아지면 더 많은 전류가 흐르게 되고 이는 다시 더 많은 열을 발생시킨다. 이러한 양의 피드백(positive feedback) 과정이 반복되면 순식간에 ‘열폭주’ 현상이 발생해 반도체 소자가 영구적인 손상을 입을 수 있다.
하지만 반도체가 물리적으로 파괴되기 훨씬 전인 100℃ 부근에서도 실리콘 반도체는 이미 정상적인 작동을 멈춘다. 그 이유는 반도체 기술의 핵심인 ‘도핑(doping)’과 관련이 있다. 순수한 진성 반도체는 절대0도에서 부도체나 다름없지만, 여기에 극미량의 불순물을 주입(도핑)해 전기 전도도를 100만배 이상 증가시키고 조절함으로써 반도체를 유용한 전자소자로 만들었다. 도핑된 불순물에서 나온 전자나 정공이 전류를 흐르게 하는 주된 캐리어(carrier)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문제는 온도가 올라가면 발생한다. 열에너지가 충분히 공급되면 실리콘 자체에서 ‘열에 의해 생성된 캐리어’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이 숫자가 너무 많아져서 우리가 의도적으로 넣어준 도핑 불순물에 의한 캐리어 수를 압도하게 되면 반도체는 더 이상 설계된 대로의 저항값을 유지하지 못하게 된다. 밴드갭이 크지 않은 실리콘의 경우 이 온도가 100℃ 남짓에 불과하다.
물론 모든 반도체가 열에 약한 것은 아니다. 실리콘보다 밴드갭이 큰 질화갈륨(GaN)이나 탄화실리콘(SiC) 같은 화합물 반도체는 고온에서도 본래의 성질을 잘 유지한다. 열에 의해 원치 않는 캐리어가 생성되는 것을 더 높은 온도까지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SiC는 전기차의 전력제어용으로, GaN은 고성능 레이더나 초소형 충전기 등 고온과 고전압을 견뎌야 하는 분야에서 각광받고 있다.
냉각능력이 반도체칩 성능 한계 결정
그러나 현재 AI 연산의 주력인 CPU와 GPU는 여전히 미세 정에 유리한 실리콘을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실리콘 반도체는 항상 열과 싸워야한다. 반도체의 열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제거 하느냐 하는 냉각능력이 해당 칩의 성능 한계를 결정짓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엄청난 양의 전력을 열로 바꾸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 열을 버리지 말고 난방이나 온수 등으로 활용하는 기술로 발전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