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고개든 원전 공론화…정부불신 키워

2025-12-30 13:00:16 게재

김성환 장관 “기후부에서만 판단할 수 없어”

“원전 2기 신설” 계획발표 1년만에 번복

경제손실·생태계 훼손 ‘탈원전 트라우마’ 재현

기후에너지환경부가제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수립을 앞두고 신규 대형원전 2기 건설여부를 공론화하겠다고 밝혀 정부정책 불신을 스스로 가중시키고 있다.

과거 문재인정부 시절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부작용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시 공론화는 막대한 경제적 손실과 생태계 훼손을 가져왔다. ‘숙의 민주주의’라는 미명하에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고 국민들에게 해결의 공을 전가했다는 지적도 받았다.

새울 3·4호기(옛 신고리 5· 6호기) 원전 건설 현장. 사진은 2024년 8월의 모습으로, 2025년 11월말 기준 종합공정률은 98.2%를 기록하고 있다. 사진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기후부, 정부정책 신뢰 스스로 파기 =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최근 한 방송에 출연해 “(에너지 체계를 어떻게 가져갈 지)기후부에서만 판단할 수 없어서 대국민 토론을 솔직하게 해보려고 한다”며 “원전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도 해보고, 내년 초 (신규 원전)2기를 어떻게 할지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회에서도 “국민의 수용성을 확인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대형 원전 건립 여부와 규모를 최종 반영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김 장관의 이러한 발언은 앞선 정부가 수립한 에너지정책 기조를 정면으로 뒤집는 결정이다.

정부는 2025년 2월 발표한 제11차 전기본에서 총 2.8GW 규모의 대형 원전 2기를 신설하고, 2037~ 2038년 가동한다는 목표를 확정한 바 있다. 탄소중립 달성과 인공지능(AI)·반도체 클러스터 등 폭증하는 전력수요를 대비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1년도 지나지 않아 재검토 입장을 밝힌 것은 정부 정책 신뢰를 스스로 갉아먹는 행위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원전이용률, 66%에서 85%로 = 원자력업계 한 관계자는 “원전 산업은 수조원의 자본과 10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되는 대형 프로젝트”라며 “정책결정이 번복될 때마다 기업들은 설비투자와 인력운용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공론화가 민주적 절차이기도 하지만 장기 인프라 사업에는 치명적인 시간손실과 신뢰훼손을 가져온다”며 “확정된 계획을 뒤집거나 유보하는 순간 투자중단과 인력이탈, 공급망 붕괴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원자력업계에서는 원전 생태계에 가해질 경제적 타격을 우려하고 있다. 문재인정부는 2017년 6월, 이미 공사가 30% 가까이 진행된 신고리 5·6호기(현재 새울 3·4호기로 개명) 건설을 3개월간 중단하고 공론화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직접적인 경제손실만 1390억원에 달했다. 공급망에 참여했던 중소기업들은 일감이 끊기며 생존위기를 겪었다. 영구 중단됐다면 사회적 손실액이 7조~12조원에 달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따라서 공론화를 통해 계획이 변경될 경우 회복세에 접어들었던 원전 부품사와 협력업체들은 또다시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

한편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원전 이용률은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시점 전후로 2017년 71.3%, 2018년 66.5%, 2019년 71.0%로 떨어졌다. 하지만 이후 2024년 82.0%, 2025년(1~11월) 85.4%로 증가해 에너지안보에 기여했다.

◆“공론화 뒤로 숨지말고, 책임있는 리더십 보여야” = 공론화 과정이 가져올 사회적 갈등도 우려된다. 과거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당시 사회적 합의보다는 진영간 세력 대결과 극심한 이념대결의 장으로 변질된 모습을 보였다.

무작위로 추출된 일반 시민참여단이 단기간 학습(33일간)을 통해 복잡한 에너지 수급체계를 완벽히 이해하고 판단하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비전문가인 시민들이 단기학습과 투표로 결정했던 구조자체가 ‘과학의 정치화’라는 지적을 받았다. 원전 찬성파와 반대파 사이에서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불필요한 이념갈등으로까지 번졌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전력정책은 토론의 대상이 될 순 있어도 확정된 국가계획을 되돌리는 수단이 돼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과거 사례에서 보듯 확정됐던 정책의 공론화는 갈등을 봉합하기 보다 증폭시키는 도구가 됐던 점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며 “정부는 공론화 뒤로 숨지 말고, 책임있는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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