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완화속 은행의 반격…사모신용에 뺏긴 시장 회복
미 대형 은행들 대출 확대
사모신용과 격차 좁혀
미국 금융시장에서 오랫동안 밀려났던 대형 은행들이 반격에 나섰다. 규제 완화 흐름을 타고 사모신용(private credit)에 내줬던 수익성 높은 대출 사업과 점유율을 다시 회복하는 한 해가 됐다는 평가다.
블룸버그는 29일 “은행들의 복수(revenge of the banks)”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2025년 들어 전통 은행들이 자산운용사들과의 경쟁에서 뚜렷한 우위를 되찾고 있다고 전했다. JP모건체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 씨티그룹, 웰스파고,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 미국 6대 은행 주가는 올해 평균 45% 이상 상승했다.
반면 블랙스톤,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 KKR, 칼라일그룹 등 주요 대체투자 운용사 주가는 전반적으로 부진했다.
마이크 메이요 웰스파고 애널리스트는 “지난 15년간 은행들은 한 손을 묶고 비은행권과 경쟁해온 셈”이라며 “이제는 두 손을 모두 쓰고 경쟁할 수 있게 됐다”고 블룸버그에 말했다.
은행들의 분위기가 달라진 배경에는 규제 환경 변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 2기 행정부 들어 연방준비제도(Fed)와 금융당국이 금융위기 이후 도입된 각종 규제를 완화하면서다. 업계가 과도하다고 비판해온 자기자본 규제와 스트레스 테스트가 후퇴했고, ‘바젤3 엔드게임’으로 불린 강화된 자본 규제안도 무산됐다. 레버리지 한도와 일부 감독 장치도 느슨해졌다.
이런 규제는 그동안 은행들의 발목을 잡고 사모신용 시장의 성장을 키운 요인으로 지목돼 왔다. 은행들이 자본 부담이 적은 안전한 대출에 집중하는 사이, 자산운용사들은 수백억달러의 자금을 모아 신속한 대출을 제공하며 더 높은 금리를 받았다. 블랙스톤의 신용·보험 자산은 9월 기준 4320억달러로 2021년 말 대비 67% 늘었고, 아폴로의 신용 자산은 같은 기간 83% 증가해 7230억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흐름이 바뀌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규제가 완화되자 대형 은행들의 대출 자산은 금융위기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JP모건은 5월 스케처스 인수를 위한 80억달러 금융을 주도했고, 워너브러더스디스커버리 분할을 위해 175억달러를 지원했다. 10월에는 일렉트로닉아츠 인수를 위한 200억달러 자금 제공을 제안해 단일 은행 기준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사모신용 업계에는 역풍도 불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은 일부 사모펀드 보유 기업의 실적을 압박했고, 인플레이션 우려로 금리 인하가 지연되면서 자금 조달과 자산 회수가 어려워졌다. 사모대출 자산 평가에 대한 당국의 감시도 강화되고 있다. 일부 기업 부실 사례가 드러나자 투자자들의 경계심도 커졌다.
블룸버그는 이런 변화 속에서 “은행 경영진들 사이에서는 대출이 다시 재미있어졌다”는 말이 나온다고 전했다. JP모건은 사상 최대 연간 순이익에 근접했고, 웰스파고는 7년간 유지됐던 자산 총량 제한이 해제됐다. 금융위기 이후 부진의 상징이던 씨티그룹도 주가가 장부가치를 웃돌고 있다.
규제 완화라는 환경 변화 속에서, 2025년은 사모신용에 밀렸던 전통 은행들이 시장 주도권을 되찾기 시작한 전환점으로 기록되고 있다. 블룸버그는 경쟁의 향방은 향후 금융 규제와 경기 흐름에 따라 다시 요동칠 가능성도 남아 있다고 전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