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데이터센터 투자열풍, 인도로 가는 길
미국 기업 주도, 110억달러 베팅 … 중동 북아프리카와 유럽 일부, 아시아 전역 커버 가능
인도가 글로벌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산업의 핵심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인도의 데이터센터 총 용량은 1.2GW 수준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5년 안에 3GW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빅테크와 데이터센터 운영사, 인도 재벌기업들이 대거 뛰어들면서 인도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차세대 디지털 인프라 시장으로 손꼽힌다.
인도에서는 이미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골드러시가 본격화됐다. 글로벌 신규 데이터센터 가운데 연간 1GW 규모가 인도에서 지어지고 있다. 일본 초대형 통신그룹 NTT, 미국 데이터센터 운영사 에퀴닉스, 싱가포르 STT 글로벌 데이터센터 같은 대형 기업은 물론 릴라이언스, 아다니 등 인도 대기업까지 경쟁적으로 투자에 나섰다. 심지어 고급 주거단지를 짓던 부동산 개발사들까지 이 시장에 뛰어든 상황이다.
미국에 지어지는 데이터센터는 이미 관련 기업들의 실적과 주가에 상당 부분 반영돼 있다. 반면 미국 기업들이 대규모로 투자하고 있지만 아직 주가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곳이 바로 인도다. 인도 데이터센터 투자는 미국 주식 투자자 입장에서도 새롭게 들여다봐야 할 영역이라는 얘기다.
동아시아와 다른 산업발전 경로
인도가 이 자리에 오른 배경은 산업 발전 경로 자체가 동아시아와 달랐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이 경공업에서 출발해 중화학공업, 전자와 반도체, 이후 IT로 이어지는 계단식 산업 고도화를 거쳤다면 인도는 이 사다리를 중간부터 통째로 건너뛰었다. 전통 제조업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했음에도 소프트웨어 개발과 IT 아웃소싱, 컨설팅 산업으로 곧장 직행했다.
1990년대 이후 세계적 기업들이 비용절감과 효율화를 위해 IT 아웃소싱을 본격화하면서 방갈로르와 하이데라바드, 푸네 같은 도시들이 세계적인 기술허브로 자리잡았다.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대규모 인력 자원, 매년 수백만명씩 배출되는 엔지니어, 비교적 빠르게 구축할 수 있었던 통신 인프라가 맞물리며 인도는 제조업 대신 서비스 중심 산업 구조를 만들어냈다. 농업과 경공업 비중이 여전히 높은 한편, 글로벌 수준의 IT 서비스 산업이 공존하는 독특한 경제구조가 탄생한 것이다.
이제 인도는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산업을 넘어 데이터센터라는 물리적 인프라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데이터센터는 굳이 인공지능이 아니더라도 2010년대 중반부터 중요성이 커졌지만 인도의 경우 성장 속도가 유독 빠르다. 2019년 20억달러 수준에 불과하던 인도 데이터센터 시장은 앞으로 1000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기준 미국 데이터센터 투자 규모로 추산되는 860억달러와 맞먹는 수준이다. 글로벌 기업들이 굳이 인도에 데이터센터를 지으려는 이유는 명확하다. 아시아 시장을 겨냥하기 위해서다. 통신에서 1밀리초는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빛과 통신이 1밀리초 동안 이동할 수 있는 거리는 약 300㎞ 정도다. 미국이나 유럽 서버에서 아시아 이용자에게 데이터를 보내려면 해저 케이블을 거쳐야 해 지연과 비용이 커질 수밖에 없다. 반면 아시아 안에 대규모 허브를 두면 수억명의 이용자를 훨씬 빠르게 커버할 수 있다.
아시아 시장 겨냥한 교두보
인도는 지리적으로 중동과 북아프리카, 유럽 일부, 아시아 전역을 동시에 아우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여기에 인도와 동남아, 중국을 중심으로 전자상거래, 모바일 결제, 스트리밍, 게임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경제성장과 함께 소비력도 빠르게 커지고 있어 글로벌 기업 입장에서는 더 늦기 전에 인프라를 현지에 구축해야 할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중국이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점도 인도의 부상을 뒷받침한다. 중국은 인터넷 검열과 데이터 규제가 강력해 해외 기업이 데이터센터를 독자적으로 운영하기 어렵고, 현지 기업과의 합작이 필수다. 지정학적 리스크 역시 부담이다. 여기에 석탄 의존도가 높은 전력구조로 인해 전력 공급 불안정성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은 24시간 안정적인 가동이 필수인 데이터센터 산업에 치명적이다.
인도 역시 전력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방향성은 다르다. 현재 발전에서 석탄 비중은 75%를 넘지만 2025년 기준 신규 발전 설비에서는 석탄 비중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 태양광과 풍력 확대를 국가 전략으로 삼아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단기 리스크보다 장기 개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투자자들이 주목해야 할 기업은 에퀴닉스(EQIX)와 디지털 리얼티(DLR)다. 다만 이들 기업은 인도 매출이나 인도 자본 지출을 따로 공개하지 않는다. 매출과 투자를 미주 유럽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태평양 같은 지역 단위로만 공개하는 게 글로벌 데이터센터 업계의 관행이기 때문이다. 인도는 항상 아시아태평양(APAC)에 포함돼 있다.
에퀴닉스(EQIX): 아시아 트래픽 허브
에퀴닉스는 글로벌 중립 데이터센터 허브 운영사로, 구글과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기업들이 서로 연결되는 교차로 역할을 한다. 인도에서는 뭄바이와 첸나이 등 핵심 도시에서 직접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며 아시아 트래픽 허브 역할을 맡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뭄바이에 신규 센터를 추가로 건설 중인데, 이는 인도 내수용이라기보다 아시아 전체 트래픽을 처리하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
2025년 1분기에서 3분기까지 에퀴닉스의 전체 매출은 약 68억달러였다. 이 가운데 미주 비중이 약 45%, 아시아태평양은 21%~22% 수준이다. 같은 기간 에퀴닉스의 자본 지출(CAPEX)은 약 29억달러로 이 중 미주에 약 66%, 아시아태평양에 약 11%~12%가 투입됐다. 에퀴닉스가 공개적으로 언급한 인도 투자 사례는 뭄바이 신규 데이터센터에 약 8600만달러를 투자한 게 대표적이다. 이는 1분기에서 3분기까지 전체 자본 지출의 약 3%에 해당한다.
인도 비중이 커질 가능성은 있지만 이것만으로 인도 성장에 대한 강한 베팅으로 보기에는 다소 애매한 측면이 있다.
디지털리얼티(DLR):공격적 인프라 전략
디지털리얼티는 보다 공격적인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 회사는 대규모로 토지를 매입해 데이터센터를 직접 개발하는 방식에 강점이 있다. 인도에서는 디지털커넥션(Digital Connexion)이라는 합작 플랫폼을 통해 진출했으며, 인도 통신 대기업 릴라이언스 계열과 글로벌 인프라 자본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최근 가장 큰 뉴스는 안드라프라데시 주에 1GW급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캠퍼스를 5년간 110억 달러(약 162조 원)를 들여 건설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금액 전부가 자본 지출이다.
디지털리얼티의 분기 매출은 약 16억달러 수준, 연간 매출은 약 64억달러 정도다. 여기에 110억달러 규모의 인도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은 연간 투자 규모를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계산상으로는 향후 몇 년간 디지털리얼티 전체 투자금의 약 30%가 인도로 향할 가능성이 나온다. 인도 데이터센터 성장에 직접적으로 베팅하고 싶은 투자자라면 에퀴닉스보다 디지털리얼티가 더 분명한 선택지로 보일 수 있는 이유다.
버티브 홀딩스(VRT):전력·냉각장비 강자
여기에 장비 공급사인 버티브 홀딩스(VRT)도 눈여겨볼 만하다. 인공지능 데이터센터는 일반 데이터센터보다 전력과 냉각 수요가 훨씬 크다. 데이터센터가 늘어날수록 서버뿐 아니라 전력설비와 냉각장비 수요도 함께 증가한다. 버티브는 이런 핵심 장비를 공급하는 기업으로, 데이터센터 운영사와는 전혀 다른 수익 구조를 갖는다.
운영사들이 막대한 자본지출을 감수해야 하는 반면, 버티브는 장비와 유지보수 서비스 매출로 상대적으로 빠르게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실제로 2025년 3분기 기준 버티브 매출은 전년 대비 29% 증가했다. 미주 매출이 43% 늘었고, 아시아태평양 매출도 20% 증가했다. 아직 운영사들의 투자 규모가 지역별 수요 차이를 완전히 반영하지 못한 상황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필요한 신규 장비 수요가 먼저 매출로 나타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미국에 지어지는 데이터센터는 이미 주가와 실적에 반영돼 있다. 반면 인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규모 데이터센터 건설 흐름은 아직 시장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 인도라는 그림을 집요하게 들여다보는 투자자에게 기회가 남아 있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