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에너지전환, 민주주의 진화 전환점 되길

2026-01-02 13:00:29 게재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수립을 둘러싼 논쟁이 치열하다. 지난해 12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바람직한 에너지믹스 1차 정책 토론회’는 원전 찬반론으로 뜨거웠다. 이날 토론회는 제12차 전기본 설계를 위해 마련된 자리다. 에너지 정책의 실질적인 집행을 위한 다양한 의견을 듣는 자리가 마련됐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문제는 ‘딱 여기까지’라는 점이다. 애석하게도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은 이성적으로 담화가 가능한 상태가 아니다. 친원전과 탈원전 프레임이 고착화됐고 각 영역별로 이해관계에 따라 양극화된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철학자 존 롤스가 말한 공적이성에 기반한 공론화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에너지 갈등을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1996년 미국 텍사스주의 전력 공급 계획 수립 과정은 숙의민주주의를 통해 에너지 갈등을 해결한 사례로 꼽힌다. 1996~1998

년 미국 텍사스의 8개 전력회사는 ‘숙의 여론조사’ 방식으로 의견을 수렴했다. 무작위로 선발된 시민들이 전문가 패널과 토론하고 학습한 뒤 다시 설문에 응답했다. 이러한 숙의 과정을 거친 뒤 재생에너지를 위해 전기요금 인상을 받아들이겠다는 응답은 52%에서 84%로 증가했다. 텍사스는 1996년 전국 꼴찌였던 풍력 발전량을 2007년 1위로 끌어올렸다.

혹자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사례’라고 비아냥거릴 수도 있다. 그런데 이는 특정 에너지원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내 신념이 옳으니까’ 혹은 ‘우리 이익에 맞으니까’가 아닌 ‘이 정책이 모든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에게 합당하니까’라는 공적 논리가 토론 출발점이 돼야 한다.

하지만 제12차 전기본 수립을 위한 공론화 과정에서는 이러한 고민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에너지 정책은 복잡하고 어려우니 전문가에게 맡기라는 식의 기술관료적 접근이나 국민이 원하는 것을 즉시 반영해 주겠다는 식의 포퓰리즘적 대응은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문가 지식을 기반으로 한 시민의 가치판단을 근거에 둔 정책 결정이야말로 ‘선호’를 구조화해 사회적 선택의 역설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다. 어려워도 ‘숙의민주주의’의 문을 끊임없이 두드리는 이유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제12차 전기본을 2026년 안으로 만든다는 방침이다. 아직 시간이 있다. 시민 공론화를 통해 정책을 결정하기로 했다면 좀 더 탄탄한 준비가 필요하다. 시민 얘기를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는 식의 ‘절차적 민주주의’만으로 끝이 난다면 공론화의 진정한 효과가 발휘되기 힘들 것이다. 이번 제12차 전기본 수립 과정이 제대로 된 숙의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대표 사례로 남기를 고대한다.

김아영 정책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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