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전환 성공하려면 전력시스템 재설계해야”

2026-01-06 13:00:02 게재

세계 에너지전환 투자액 2조4천억달러 … 전환의 핵심은 전력망·안정성

세계 에너지전환 투자가 사상 최대 수준으로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에너지전환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은 재생에너지 설비 확충이 아니라 전력망·저장·안정성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전력시스템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국제에너지 금융보고서인 ‘2025년 글로벌 에너지 전환 투자·금융 동향’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에너지전환 투자액은 약 2조4000억달러(약 3474조4800억원)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5년 최종 집계치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태양광 전기차 배터리 등 저탄소 분야 전반에 걸쳐 투자가 늘었지만 동시에 전력망에 대한 투자는 설비투자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는 기후정책연구소와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가 공동으로 작성했다.

◆에너지전환 투자 사상최대지만 여전히 미흡 =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에너지전환 부문별 투자액은 전기차가 7630억달러로 가장 많았다. 여기에는 전기차 충전 인프라 390억달러 등 인프라 투자비도 포함됐다.

다음은 태양광으로 전년대비 49% 증가한 5540억달러로 집계됐다. 이어 전력망(그리드) 3590억달러, 에너지효율 3460억달러, 에너지저장장치(ESS) 540억달러, 수소 80억달러 순이었다.

풍력투자는 1960억달러를 기록했지만 전년대비 11% 감소했다. 인허가 지연, 비용상승, 공급망 문제 등이 얽혀 신규 투자가 위축된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2024년 세계 에너지전환 총 투자규모는 2조4000억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며 “다만 파리협정(지구온도 1.5℃ 이내 상승) 달성을 위해서는 연평균 5조달러 이상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라 송·배전망 증설 수요가 급증했다”며 “하지만 전력망 투자는 발전설비 투자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ESS 투자 역시 재생에너지 간헐성 대응수단으로 중요성이 커졌지만 여전히 전체 전력시스템 수요 대비 규모는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지역별로는 중국 독주, 미국 주춤 = 지역별 투자에서는 중국이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중국은 태양광 배터리 전기차 전반에서 대규모 투자를 지속하며 에너지전환 투자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보고서가 “중국 없이는 세계 에너지전환 통계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평가할 정도다.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계기로 청정에너지 제조·전력·저장 분야 투자가 급증했다. 다만 2025년 1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이후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언, IRA 관련예산이 줄줄이 삭감되고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활용도가 늘며 변화가 생겼다. 원전 르네상스 시대를 발표하면서 신규 대형원전 10기 건설, 소형모듈원자로(SMR) 사업에 1조원 이상 투자 등을 예고했다.

신흥국의 경우 에너지전환 필요성은 크지만 금융 접근성과 정책 안정성 부족으로 투자 확대에 한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프리카와 동남아, 남미지역에서 에너지전환의 최대 병목은 금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더 많이 짓자’가 아니라 ‘제대로 연결하자’ = 보고서는 “송전망 배전망 ESS 계통운영기술 등 ‘전력 시스템’이 에너지전환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시사한다. 전력망 투자 지연은 재생에너지 확대의 최대 리스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에 직접적인 경고로 읽힌다. 한국은 국토가 좁고 수도권에 전력수요가 집중된 구조를 갖고 있다. 재생에너지 발전지역은 전남지역에 많이 몰려있다. 송전망 확충이 지연될 경우 전환은 속도를 낼 수 없고, 산업 경쟁력까지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또 보고서는 에너지전환 투자 확대와 동시에 천연가스와 원전의 전략적 가치가 재평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가스는 출력 조절이 가능한 유연 전원으로 미국과 중동 등에서, 원전은 안정적인 기저 전원으로 부상하며 미국과 중국 유럽에서 활용도가 높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가로막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안정성을 흡수하기 위한 현실적 해법으로 풀이된다.

특히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첨단 제조업 확산은 전력수요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미국에서는 대형 기술기업과 전력 유틸리티가 기가와트(GW) 단위의 신규 전력을 확보하기 위해 천연가스와 원전을 다시 선택하고 있다. 재생에너지가 늘고 있지만 24시간 무정전·고품질 전력을 요구하는 산업 수요를 충족하기에는 아직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 자체만 목표로 삼을게 아니라, 안정적이고 경쟁력있는 전력공급을 위해 혼합형 전원 포트폴리오를 수립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에너지업계 한 관계자는 “에너지전환은 단순히 탈화석연료 과정이 아니라 전력시스템 전체의 재설계 과정이 돼야 한다”면서 “전환의 성공여부는 재생에너지 확대라기보다 시스템안정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에너지전환에 있어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이 짓자’가 아니라 ‘제대로 연결하자’는 정책전환”이라는 견해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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