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에너지

말의 해, 말에게서 배우는 에너지전환의 지혜

2026-01-07 13:00:01 게재

말의 기질은 예민하면서도 관대하다. 초원에서 진화한 말은 포식자에 민감한 신경계를 지녔고, 작은 소리와 움직임에도 즉각 반응한다. 동시에 신뢰가 형성되면 상대의 감정과 몸짓에 깊이 공명한다. 생태적으로 말은 땅과 바람의 동물이다. 발굽은 땅을 박차며 에너지를 만들고, 긴 다리와 폐는 바람과 속도를 자신의 일부로 끌어들인다. 그래서 말은 자연 속에서 언제나 ‘흐름’을 상징해 왔다. 정지보다 이동, 고정보다 변화하는 생명을 상징한다.

올해는 기후, 에너지, 환경 분야에서 흥미로운 대비가 선명해지는 해가 될 것이다. 우선 미국 등의 정책후퇴 기조가 지속될지가 관심사다. 일부 국가에서는 유권자들이 탄소 규제비용 부담을 무겁게 체감하면서 기후정책 추진 정당에 대한 지지가 감소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 분야에서 나타나는 ‘기후 피로감’은 실제 전환의 중단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작 경제와 기술 시스템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의 시계를 과거로 되돌리려는 시도는 시대의 흐름 앞에서 늘 좌절되는 모습을 보였다.

에너지 시스템 재편 강제하는 현실

그렇다면 ‘정치와 현실의 부조화’가 생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각자의 시간표가 다르기 때문이다. 정치와 달리 에너지 산업 금융시스템은 단기 여론보다는 장기 비용과 수익성, 리스크 관리에 의해 움직인다. 재생에너지 비용 하락, 전력수요 급증, 기후 리스크의 재무적 내재화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기업과 투자자는 ‘기후위기를 믿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고려하지 않을 때 닥칠 ‘손실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 때문에 정치적 언어와 상징이 일시적으로 퇴조한다 해도 기술 투자와 시장의 선택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이 사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국가가 바로 미국이다. 트럼프행정부는 해상풍력 중단, 주정부 기후정책 무력화 시도 등 국제사회의 흐름에 반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연방 차원의 제동은 오히려 주 정부, 도시, 기업의 자율적인 기후위기 대응을 강화하는 촉매로 작용해 왔다.

트럼프행정부 1기에 나타났던 정치적 수사와 현실 사이의 엇갈림은 2기에도 반복되고 있다. 당시에도 기후변화를 부정하고 파리협정을 탈퇴했지만 미국 전력 믹스에서 석탄 비중은 큰 폭으로 하락했고 온실가스 배출량도 눈에 띄게 감소했다. 이번에도 같은 흐름이 나타날지 지켜볼 일이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에 견줘 53~61% 감축하겠다는 우리의 목표는 매우 도전적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이 목표를 제시한 것은 기후위기 대응을 더 이상 ‘부담’이 아니라 ‘기회’로 삼겠다는 명확한 신호로 읽힌다. 현실 여건이 녹녹치 않지만 정부 수중에 마땅한 수단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올해부터 4차 계획기간에 들어서는 배출권거래제에는 제도를 정상궤도로 돌리기 위한 여러 개선책이 포함돼 있다.

그중에서도 눈여겨볼 대목은 ‘한국형 시장안정화제도’다. 이 제도는 배출권이 과도하게 공급돼 가격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거나 거래가 위축될 경우, 정부가 이미 계획된 경매 물량 가운데 일부를 회수해 시장에 개입할 수 있도록 한 장치다.

올해를 기점으로 에너지전환의 무게중심도 선언이나 목표치보다 현실의 물리적 제약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을 100기가와트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과감한 목표다. 그런데 문제는 공급 목표 달성만으로는 전환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공지능과 데이터센터 확산, 전기화 가속, 극한기후의 빈발은 전력 수요를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다. 이들은 정책 의지와 무관하게 에너지 시스템의 전면적인 재편을 강제한다. 그런 점에서 2026년은 전환의 초점이 ‘발전원’에서 ‘전력 시스템 전체’로 이동하는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송전망 병목, 지역 간 전력 수급 불균형, 데이터센터 입지를 둘러싼 갈등이 핵심 쟁점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설득력 가지려면

그래서 시선은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옮겨간다. 목표보다 중요한 것은 이행의 신뢰성이다.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누가, 언제, 어떻게 감축 책임을 나누어 가져야 하는지 정교한 설명이 뒤따라야 한다. 에너지전환도 마찬가지다. 전력망 시장 요금제도 수용성을 한 덩어리로 묶어 재설계해야 한다. 유연성 자원의 시장 편입이나 전기요금 지역별 차등제 도입 등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말은 진화 과정에서 갈등을 최소화하면서도 질서를 유지하는 사회성을 발달시켰다. 거리, 신호, 반복된 경험을 통해 관계를 조율한다. 말의 지혜가 올해 변화의 나침반이 되길 바란다.

안병옥 전 환경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