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지방시대를 여는 두 개의 문
지방시대는 선언만으로 오지 않는다. 문이 열려야 시작된다. 어떤 문을 열어야 할까. 사람들이 부담 없이 지방을 오갈 수 있는 ‘이동’의 문, 그리고 편히 머물 수 있는 ‘체류’의 문이다. 이 두 개의 문이 동시에 열릴 때 지방은 비로소 친밀한 ‘관계’의 장소가 되고, 일상을 나누는 ‘생활’ 공간이 될 것이다.
현재 지방으로 가는 길은 멀고 비싸며, 지방에서 머물 수 있는 공간은 태부족이다. 각자도생하듯 지방에 오라고 하는 것은 진정한 초대가 아니다. 오는 길에 꽃을 뿌리지는 못한다 해도 장애물을 치우고 문턱을 낮추려는 노력은 해야 한다. 지방시대를 앞당길 두 개의 문부터 활짝 열자.
전국 대중교통 정기권으로 이동권 보장
첫번째 문은 전국의 대중교통을 정액으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월정기권 ‘코리아 로컬 패스(K-Local Pass)’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지방 이동은 큰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결단의 영역이다. 서울~전주 기준 고속철도는 왕복 6만~8만원, 고속·시외버스도 왕복 4만~5만원이 든다. 일주일에 한번 오가도 한달 교통비가 20만원을 훌쩍 넘는다. 이런 구조에서 “지방에 살아보라”는 권유는 곧 “추가비용을 감내하라”는 부담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월 5만원 수준의 전국 대중교통 정기권이다. 고속철도를 제외한 일반철도(새마을·무궁화)와 고속·시외버스, 시내 및 광역교통(버스, 도시철도, BRT)을 하나로 묶어 전국 어디든 부담 없이 오갈 수 있도록 ‘이동할 권리’를 보장하자는 것이다. 이 정기권이 도입된다면 서울~전주를 한두 번만 왕복해도 본전을 뽑는다. 지방을 자주 오갈수록 비용 절약 효과가 커질 것이다.
이는 단순한 할인정책이 아니라 국민의 삶의 궤적을 바꾸도록 초대하는 비용구조의 대전환이다. 독일처럼 2022년 처음 도입할 때에 부담없는 9유로(1만5000원) 티켓으로 시작해 자리를 잡게 한 뒤, 49유로(현재는 63유로, 10만원)로 가격을 현실화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최근 지방시대위원회가 대중교통 활성화를 위해 환급형·정액형 교통패스 확대를 발표한 점은 의미가 있다. 다만 현재의 교통패스는 고속철도를 제외하더라도 일반철도(새마을·무궁화)와 고속·시외버스가 빠져 있어 전국의 지방으로 이어지는 생활권을 만들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대중교통이 발달된 대도시와 주변 지역의 이동은 편해지겠지만, 수도권에서 멀리 이동할 때에는 여전히 비용의 벽에 가로막혀 지방으로의 이동은 반복 가능한 일상이 되기 어렵다. 독일이 고속철도를 제외하고 지역간 일반 철도와 버스, 페리까지 거의 모든 대중교통을 포괄하는 전국 정기권을 도입한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한다.
빈집 활용한 마을호텔로 체류권 확보
두번째 문은 전국 어디에서든 부담 없이 머물 수 있는 ‘쾌적한 체류공간’이다. 이동의 문이 열려도 머물 곳이 없다면 지방시대로 나아갈 수 없다. 머무를 수 있어야 관계가 생기고, 관계가 깊어져야 정착으로 이어진다. 지방에는 하룻밤 관광객을 위한 숙소는 넘치지만 일주일이나 한 달을 살아볼 ‘생활형 숙소’는 턱없이 부족하다. ‘5도2촌’이나 ‘4도3촌’처럼 서울과 지방을 오가는 ‘두 지역 살이’를 시도하는 데에도 체류공간은 필수요건이다.
전국 시·군마다 최소 100개 이상의 숙소로 ‘월 1만원 마을호텔’을 만들자. 새로 짓지 말고 전국 도처에 널린 빈집과 유휴공간을 멋지게 리모델링해서 상징적 비용으로 제공하는 방식이다. 전남 강진군의 마을호텔, 경주·함양의 한달 살아보기와 체류형 스테이, 월 1만원 수준의 공공임대 실험까지 이미 가능성은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이를 전국 단위로 확대한다면 두 지역 살이는 거창한 꿈이 아닌 일상이 될 것이다.
이 두 개의 문을 여는 일은 지방정부의 선의에만 맡길 수 없다. 국가 차원의 설계가 필요하다. 지방시대위원회는 철도와 고속·시외버스를 포함한 전국 단위 대중교통 월정기권을 조속히 도입해 대도시권에 머무는 교통복지를 넘어 지방을 하나로 이어주는 ‘전국 생활권’을 만들어야 한다. 동시에 시·군당 100곳 이상의 체류공간 확보를 지방시대의 과제로 제시하고 빈집을 활용한 마을호텔 조성·운영을 적극 지원하기 바란다.
한달 5만원으로 전국을 오갈 수 있는 대중교통 정기권은 자유로운 ‘움직임’의 문이고, 시·군당 100곳 이상의 월 1만원 마을호텔은 전국 어디에든 내 방을 갖게 하는 ‘머무름’의 문이다. 두 개의 문이 함께 열릴 때 비로소 지방에 피가 돌고 지역 소생의 숨결이 시작될 것이다.
지방시대는 선언이 아니라 바로 이 문을 여는 실천에서 시작된다. 이동과 체류를 위한 두 개의 문으로 지방시대를 활짝 열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