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두로 이후…쿠바 질식위기 몰리나

2026-01-07 13:00:01 게재

베네수엘라 정권 이양 변수 … 석유-안보 교환구조 흔들리며 체제 압박 가속

6일(현지시간) 쿠바 아바나에서 한 노인이 수레에 재활용품을 실어 나르고 있다.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체포 작전 과정에서 미군이 공습을 감행해 베네수엘라와 쿠바 군인 수십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카라카스와 아바나 당국이 밝혔다. AFP=연합뉴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전격 체포 이후, 트럼프 행정부의 다음 표적이 쿠바가 될 수 있다는 긴장이 커지고 있다. 베네수엘라 정권 이양 과정이 본격화될 경우, 석유와 안보 협력에 깊이 의존해온 쿠바 체제가 연쇄적인 압박에 직면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미군은 이달 초 야간 기습 작전을 통해 마두로 대통령과 부인을 생포했다. 이 과정에서 마두로 경호를 담당하던 쿠바 군·정보 요원 다수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6일(현지시간)쿠바 정부 발표를 인용해 “마두로의 신변 보호 임무에 투입된 쿠바 혁명군과 내무부 소속 요원 32명이 미군 작전 중 사망했다”고 전했다. 쿠바 안보기구를 관찰해온 전직 정보요원들과 반체제 인사들에 따르면, 마두로 개인 경호를 위해 쿠바 측은 약 140명의 요원을 배치했던 것으로 추산된다.

이번 작전은 베네수엘라 지도부를 보호해온 쿠바 정보기관의 위신에 치명적인 타격을 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인구 약 1000만명에 불과한 가난한 섬나라임에도, 쿠바의 안보·정보 조직은 약 10만명의 요원을 거느릴 정도로 거대하다.

WSJ는 “마두로 체포는 쿠바 정보기관이 수십 년간 유지해온 ‘무적의 신화’를 깨뜨린 사건”이라고 분석했다. 멕시코 외무장관을 지낸 호르헤 카스타녜다는 이 신문에 “쿠바는 미국에 실질적인 피해조차 주지 못했다”며 “필요한 위치에, 필요한 전력으로 배치돼 있지 않았다는 점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문제는 쿠바가 느끼는 위기감이 단순한 체면 손상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베네수엘라 정권 이양은 쿠바의 생존 기반 자체를 흔들 수 있는 구조적 변수다. 쿠바는 수십 년간 베네수엘라로부터 보조금이 붙은 석유를 공급받는 대신 의료 인력과 군·정보 요원을 파견하며 밀착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새 베네수엘라 정부가 미국과 관계 재설정에 나설 경우, 이런 협력 구도는 뿌리채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베네수엘라의 석유 공급은 쿠바 경제의 생명선”이라며 “이 고리가 끊길 경우 쿠바는 소련 붕괴 직후인 1990년대 초반 이후 가장 취약한 국면에 놓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베네수엘라의 쿠바 석유 수출은 2021년 하루 10만배럴 이상에서 2025년 1만6000배럴 수준으로 급감한 상태다.

쿠바 내부 상황도 버틸 여력이 크지 않다. 관광산업 침체와 전력난, 식량 부족이 겹치며 사회 불만이 누적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쿠바의 독립 언론인을 인용해 “국가가 더 이상 최소한의 운영 자원조차 제공할 수 없다는 경고가 고위 관료들에게 전달됐다”고 전했다. 억압 장치 유지를 위한 재정 부담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미국측 발언도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기자들에게 “쿠바는 무너질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고,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베네수엘라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쿠바로부터의 종속관계를 끊어야 한다는 점”이라고 언급했다. WSJ는 이를 두고 “베네수엘라 정권 재편을 지렛대로 쿠바를 고립시키려는 미국의 전략이 노골화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쿠바 정권이 미국의 직접 공격이 아니라, 동맹 약화와 경제 기반 붕괴가 맞물리는 연쇄적 충격에 의해 체제 안정성이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고 본다. 전직 쿠바 정보요원 출신 엔리케 가르시아는 WSJ에 “억압 장치는 자원과 특권이 유지돼야 작동한다”며 “베네수엘라로부터의 지원이 끊기는 순간, 어떤 체제도 이를 버텨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쿠바가 기대를 걸 수 있는 외부 변수는 러시아 정도로 제한된다. 최근 군사·경제 협력을 강화하며 완충 역할을 기대하고 있지만, 러시아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재정과 외교적 여력이 제한된 상황이어서 쿠바의 석유와 재정 공백을 전면적으로 메우기는 쉽지 않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마두로 체포로 촉발된 변화는 아직 진행형이다. 다만 베네수엘라 정권 이양이라는 정치적 전환이 쿠바의 에너지·안보·체제 안정성 전반을 동시에 압박하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쿠바가 이 파고를 넘을 수 있을지는, 베네수엘라 이후 트럼프 행정부의 선택과 국제 정세의 향방에 달려 있다.

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

김상범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