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 원유로 쏠리는 월가의 시선

2026-01-08 13:00:08 게재

세계 최대 매장량 … 격변 뒤 에너지자산 투자 분주

니콜라스 마두로 전 대통령 축출 이후 베네수엘라에 대한 월가의 시선은 채권을 넘어 원유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세계 최대 원유 매장량을 보유한 베네수엘라가 정치 격변을 계기로 에너지 시장에 복귀할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면서, 글로벌 에너지 기업과 사모자본, 투자은행들이 잇따라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우선 금융시장에서 즉각 반응한 것은 채권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디폴트 상태였던 베네수엘라 국채와 국영석유회사 채권 가격은 정권 교체 직후 이틀간 최대 35% 급등했다. 하루 동안 채권 보유자들이 거둔 평가이익은 약 40억달러에 달했고, 일부 투자자들은 채무 재조정이 본격화될 경우 추가 수익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다만 이런 채권 랠리는 서막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많다.

시장의 진짜 관심은 원유와 에너지 인프라다. 베네수엘라는 확인 매장량 기준 세계 최대 원유 보유국이지만, 생산량은 마두로 집권 기간 급감해 하루 100만배럴에도 미치지 못했다. 1970년대 정점이던 하루 375만배럴과 비교하면 4분의 1 수준이다.

블룸버그는 노후 유전과 정제시설, 파이프라인을 복구해 생산을 정상화하려면 향후 10년간 매년 약 100억달러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보다는 장기간 자본과 기술을 투입해야 하는 구조다.

미국 행정부 역시 원유를 핵심 지렛대로 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원유 산업을 되살리기 위해 미국이 수십억달러를 투입할 수 있다고 밝히며, 미국 기업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현재 셰브론은 베네수엘라에서 합법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미국 대형 석유기업이며, 과거 국유화 피해를 본 코노코필립스는 아직도 약 100억달러의 중재 배상금을 돌려받지 못한 상태다.

이런 상황은 사모자본과 대체투자 자금에 기회로 읽힌다. 블룸버그는 브룩필드와 블랙스톤 같은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이 이미 에너지 자산 투자 경험을 갖고 있으며, JP모건과 시티그룹 같은 대형 은행들도 부패와 투자 공백으로 무너진 국가 재건에 관여해온 전례가 있다고 전했다. 사우디 국부펀드와 아부다비 투자청 등 중동 국부펀드 역시 남미 에너지 자산을 장기 투자 대상으로 검토해왔다.

다만 불확실성도 크다. 베네수엘라 정부 핵심 인사 상당수가 여전히 미국의 제재 대상에 올라 있어 계약과 자금 집행이 쉽지 않고, 국제 유가가 5년래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점도 투자 수익성을 제약한다. 정치·제도적 마찰이 장기화될 경우 생산 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크게 늦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그럼에도 월가는 베네수엘라를 다시 하나의 ‘원유 회사’처럼 바라보고 있다. 신흥국 전문 자산운용사 그라머시 펀드매니지먼트의 페타르 아타나소프 공동대표는 블룸버그에 “베네수엘라는 매우 복잡한 이야기이지만, 현재로서는 거의 하나의 석유기업처럼 분석할 수 있다”며 “모든 것은 원유 부문에 어떤 투자와 개혁이 뒤따르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정치 불확실성과 막대한 자본 수요라는 제약에도 불구하고, 베네수엘라의 방대한 원유 자원이 다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계산서에 올라오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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