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베네수엘라 석유 장악'의 경제학
원유 관리·통제 돌입 ··· "위험도 낮지만 이익도 낮다"
미국이 베네수엘라 석유를 사실상 관리·통제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겉으로 보면 과거 석유를 둘러싼 강대국의 개입을 떠올리게 하지만, 경제적 효과는 그만큼 크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8일(현지시간) “위험은 낮지만, 얻을 수 있는 이익도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베네수엘라 석유 판매를 미국이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미국은 베네수엘라산 원유 3000만~5000만배럴을 확보하게 된다. WSJ는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에서 보여준 ‘지분 확보식 거래 방식’을 외교 정책에까지 확장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숫자만 보면 나쁘지 않아 보인다. 베네수엘라 원유는 품질 문제와 제재 여파로 국제 유가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된다.
배럴당 50달러를 기준으로 하면, 이번에 확보되는 원유의 가치는 15억달러에서 25억달러 수준이다. 미국이 대규모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단기적으로는 비용 대비 수익이 있는 거래처럼 보일 수 있다. WSJ도 “미국인 희생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현금 흐름만 보면 이득처럼 보인다”고 전했다.
하지만 WSJ는 이런 계산이 과거의 시각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1970~1990년대까지만 해도 석유는 국가 경제와 안보를 좌우하는 핵심 자원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는 것이다. 미국은 2020년 이후 원유 순수출국이 됐고, 에너지 효율 개선과 산업 구조 변화로 경제 규모에 비해 석유 소비 비중도 크게 줄었다.
실제로 미국 경제에서 석유의 중요성은 예전만 못하다. 코로나19 초기 글로벌 공급망을 멈춰 세운 원인은 원유 부족이 아니라 반도체 부족이었다. WSJ는 “오늘날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것은 석유보다 기술”이라고 짚었다. 미국이 해외에서 더 많이 벌어들이는 것도 석유가 아니라 첨단 기술과 전자제품이다.
베네수엘라가 앞으로 생산량을 늘릴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S&P글로벌에너지의 짐 버크하르트는 베네수엘라가 24개월 안에 하루 원유 생산량을 82만6000배럴에서 135만배럴로 늘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를 전제로 하면 연간 매출은 약 150억달러에 달한다. 다만 이는 로열티를 거의 받지 않는다는 낙관적인 가정이 깔린 수치다. 로열티율이 50%로 오르면 수익은 절반으로 줄어든다.
이 정도 규모는 미국 경제 전체로 보면 크지 않다. WSJ에 따르면 미국 내 석유·가스 산업은 매년 2400억달러를 국내총생산에 기여하고, 연방 정부에도 140억달러의 세입을 안긴다. 베네수엘라에서 얻는 수익은 이에 비하면 부수적인 수준에 가깝다.
미국 석유기업들에도 상황은 비슷하다. 엑슨모빌, 셰브론, 코노코필립스 등은 과거 국유화로 빼앗겼던 자산 일부를 되찾고 새로운 사업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 기업의 연간 매출은 합산 5000억달러가 넘는다. 베네수엘라 사업이 기업의 실적이나 전략을 근본적으로 바꿀 정도는 아니라는 평가다.
반대로 비용 부담은 적지 않다. WSJ는 베네수엘라 석유 시설이 오랜 사회주의 정책과 제재로 심각하게 낡아 있다고 전했다. 생산량을 하루 50만배럴 늘리기 위해서만 약 200억달러가 필요하다는 추산도 나온다. 여기에 치안 안정, 행정 복구, 외국 기업 보호 비용까지 더해질 경우 부담은 더 커질 수 있다.
역사적 사례도 언급됐다. 조지워싱턴대의 노엘 마우러 교수는 미국이 파나마 운하를 반환한 이유로 “유지 비용이 경제적·전략적 이익을 넘어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베네수엘라에 대해 “미국 석유 산업에는 돈이 될 수 있지만, 그 밖의 분야에서 누가 이익을 보는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경제 외적인 이유도 강조한다. 마두로 정권의 마약 밀매 연루 의혹, 러시아·중국·쿠바 세력의 영향력 차단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WSJ는 "중국이 이미 다양한 원유 공급선을 확보하고 있고, 전기차 확산으로 석유 의존도도 점차 낮추고 있다"고 전했다. 석유를 둘러싼 지정학적 효과 역시 과거만큼 크지 않다는 의미다.
WSJ는 결국 베네수엘라 석유를 둘러싼 이번 조치가 “과거 석유 패권 시대의 논리를 떠올리게 하지만, 지금의 경제 현실에서는 그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석유 자체보다 변화한 세계 경제 구조가 이번 결정의 성과를 제약하고 있다는 것이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