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시위, 뿌리는 경제 붕괴와 정치 불신

2026-01-12 13:00:01 게재

고물가·화폐폭락 민심 분노

강경 통치, 미·이스라엘 변수

최근 이란에서 이어지는 대규모 시위는 단순한 유혈 진압이나 사망자 집계의 문제가 아니다. 사태의 근본에는 장기간 누적된 경제난과 정치권력에 대한 구조적 불신, 그리고 국제관계에서의 고립과 긴장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망자 수가 급증하고 있다는 경고 역시 이러한 요인들이 한꺼번에 분출된 결과로 해석된다.

11일(현지시간) AP통신과 로이터통신은 인권단체와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 이번 시위가 민생 불만에서 출발했지만 빠르게 체제 비판으로 번지고 있다고 전했다.

시위는 화폐가치 폭락과 고물가, 생필품 가격 급등에 대한 항의로 시작됐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란 리알화의 급격한 가치 하락은 수입 물가를 끌어올렸고 이는 식료품과 연료 가격 상승으로 직결됐다. 상인과 중산층이 먼저 거리로 나섰고 이후 학생과 노동자, 공공부문 종사자들이 가세하면서 시위는 전국으로 번졌다. 마치 2019년 연료 가격 인상에 반발해 벌어진 시위와 닮았지만 당시보다 체감되는 경제적 고통은 훨씬 크다는 평가가 잇따른다.

문제는 이란 정부가 이 같은 위기에 대해 설득력 있는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BBC 페르시아어 방송은 미국과 서방의 제재 장기화, 재정 악화, 국영 부문의 비효율이 맞물리며 민생이 빠르게 나빠졌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더는 버틸 수 없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으로 번졌고 생활고에 대한 항의는 단기간에 체제 비판으로 전환됐다. 경제 문제를 둘러싼 좌절감이 정치적 분노로 옮겨간 셈이다.

정치적 불신 역시 시위의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도·개혁 성향으로 평가받던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에 대한 기대는 취임 반년 만에 빠르게 식었다. AP통신은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집권 초기에는 민생 안정과 사회적 대화를 강조했지만 시위가 격화되자 강경 진압을 용인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전했다. 이는 “누가 집권하든 체제는 바뀌지 않는다”는 냉소를 확산시켰고 정치 전반에 대한 불신을 한층 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고지도자 중심의 권력 구조에 대한 불만도 깊다. BBC Verify는 대통령이 행정수반임에도 안보·사법·미디어 권력이 성직자 지도부에 집중돼 있어 정책 실패의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고 전했다. 이번 시위에서 ‘성직자 통치 종식’을 요구하는 구호가 등장한 것은 단기적 민생 불만을 넘어 통치 구조 자체에 대한 근본적 문제 제기가 시작됐음을 보여준다.

정부의 대응 방식은 이러한 불신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전국적인 인터넷과 이동통신 차단이 단기적으로는 시위 확산을 늦출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가가 시민을 적대시한다는 인상을 강화한다고 지적했다. 정보 차단은 소문과 공포를 키우고 해외 언론과 인권단체의 추정치가 난무하는 환경을 만든다. 이는 국제사회의 비판을 불러오고 다시 내부 결속과 탄압 강화를 정당화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는 평가다.

국제관계 변수도 사태를 복잡하게 만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위와 관련해 ‘개입 옵션’을 언급하자 이란 지도부는 즉각 외부 음모론을 강화했다. 로이터통신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행정부가 군사·사이버 옵션과 추가 제재를 포함한 대응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공개적 지지 발언 역시 같은 맥락에서 활용되고 있다. 실제 개입 여부와 무관하게 이러한 발언들은 이란 내부에서 시위를 ‘외세가 조종한 불안정 시도’로 규정하는 논리를 강화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미국의 군사·사이버 옵션 검토는 또 다른 불안을 키운다. WP는 외부 압박이 정권을 약화시키기보다 ‘국가 생존’ 프레임 아래 내부 결속을 자극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동시에 이는 중동 전반의 긴장을 높여 이란 내부 시위가 역내 안보 문제로 번질 개연성도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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