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석유 놓고 빅오일도 갈라져

2026-01-12 13:00:01 게재

셰브론은 선점 가속, 업계 1위 엑슨은 “투자 불가”

유가안정 노린 미 정부 구상에 셰일 업계는 반발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 재건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글로벌 석유 대기업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고 있다. 세계 최대 원유 매장량을 보유한 베네수엘라를 다시 글로벌 원유 공급망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구상은 미국 내 유가를 낮추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기업별로는 기회와 위험이 극명하게 엇갈린다는 평가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9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의 베네수엘라 정책을 둘러싼 빅오일과 셰일 업계의 엇갈린 반응을 상세히 전했다.

가장 앞서 움직이고 있는 곳은 미국 석유 대기업 셰브론이다. 셰브론은 현재 베네수엘라에서 실질적으로 사업을 이어가고 있는 유일한 미국 메이저로, 정권 교체 이후 생산 확대의 최대 수혜자로 꼽힌다. FT에 따르면 셰브론은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회사 PDVSA와의 합작 사업을 통해 하루 약 24만배럴을 생산하고 있으며, 기존 설비 확장만으로도 1년 반에서 2년 안에 생산량을 50%가량 늘릴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선점 효과의 배경에는 셰브론 최고경영자(CEO) 마이크 워스와 트럼프 대통령의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워스 CEO는 트럼프 행정부 1기부터 재무부와 백악관 핵심 인사들과 직접 소통하며 제재 예외 허가를 확보해 왔고, 그 결과 경쟁사들이 철수한 동안에도 베네수엘라에 남아 사업을 유지할 수 있었다.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은 셰브론이 “명백히 선두에 서 있다”고 평가하며, 베네수엘라 재건 논의 과정에서도 워스 CEO와 정기적으로 연락해 왔다고 밝혔다.

반면 또 다른 메이저인 엑슨모빌은 훨씬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엑슨모빌 CEO 대런 우즈는 백악관에서 열린 에너지 업계 회의에서 베네수엘라를 “현재 상태로는 투자 불가능한 나라”라고 직설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법적·상업적 제도 전반에 중대한 변화가 필요하며, 지속 가능한 투자 보호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엑슨모빌은 2000년대 이후 베네수엘라에서 두 차례 자산을 몰수당한 경험이 있어, 정치·법적 리스크에 특히 민감하다는 설명이다.

엑슨모빌의 이런 입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과는 온도 차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석유 기업들이 최소 1000억달러를 투입해 베네수엘라의 노후화된 석유 인프라를 재건하길 원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글로벌 원유 공급을 늘리고 미국 내 휘발유 가격을 갤런당 2달러 아래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다만 과거 몰수 피해에 대한 보상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기업들에게 빠른 결단을 압박하고 있다.

셰브론과 엑슨 사이에는 미묘한 간극이 존재하지만, 공통의 고민도 있다. 베네수엘라 투자는 수년간의 대규모 자본 투입이 불가피한데, 정치적 안정과 법치가 실제로 정착될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수십억달러를 투입해야 하는 사업에서 불확실성은 가장 큰 비용”이라고 지적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안보와 법적 보호를 약속하고 있지만, 현지 치안과 제도 정비가 실제로 뒷받침될지는 아직 미지수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결과적으로 ‘규모의 경제’를 갖춘 빅오일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FT는 베네수엘라나 알제리처럼 정치적 리스크가 큰 지역일수록 막대한 자본력과 법률·안보 대응 역량을 갖춘 대형 석유기업만이 진입을 고려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글로벌 석유 산업에서 메이저들의 영향력이 다시 강화되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한편 셰일 업계의 반발은 커지고 있다. 텍사스를 중심으로 한 미국 셰일 기업들은 베네수엘라산 원유가 대규모로 시장에 풀릴 경우 유가 하락 압력이 커져 미국 내 생산이 위축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배럴당 60달러 이상은 돼야 수익을 낼 수 있는데, 베네수엘라 공급 확대는 가격을 50달러 안팎으로 끌어내릴 수 있다는 우려다. 에너지정보청(EIA)은 이미 2026년 미국 원유 생산이 하루 10만배럴가량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베네수엘라 카드가 단기적으로는 유가 안정이라는 정치적 성과를 가져올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 에너지 산업 내부의 균열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베네수엘라 재진입을 둘러싼 빅오일의 계산과 셰일 업계의 불만은, 미국 에너지 전략이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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