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도로 위 암살자 ‘블랙아이스’ 주의보

2026-01-12 13:00:14 게재

치사율 1.5배 결빙 사고

알려졌지만 방치된 구간

1월 들어 블랙아이스로 의심되는 교통사고가 전국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고속도로와 내리막, 교량 인근에서 다중 추돌과 전복 사고가 잇따르며 사망자도 늘고 있다. 블랙아이스는 해마다 반복되는 겨울 현상이지만, 사고가 나는 조건과 장소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피해 역시 줄지 않고 있다.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10일 새벽 경북 서산영덕고속도로 남상주 나들목 인근에서 차량 여러 대가 잇따라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해 다수의 사망자와 부상자가 나왔다. 화물차 단독 사고 뒤 뒤따르던 차량들이 제동에 실패하며 연쇄 추돌로 이어진 것으로 파악됐다. 사고 당시 기온은 영하권이었고, 전날 내린 비가 얼어붙어 노면이 미끄러운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노면 결빙, 이른바 블랙아이스 가능성을 놓고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같은 날 경북 성주군 초전면의 한 내리막 도로에서도 25톤 트럭 2대가 각각 미끄러져 하천과 옹벽을 들이받아 운전자 2명이 숨졌다. 이 구간 역시 전날 강수 이후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 상태였고, 내리막 구조상 제동이 쉽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고 모두 새벽과 오전 시간대, 고속 주행이나 내리막이라는 공통 조건을 안고 있었다.

블랙아이스는 기온이 갑자기 내려가면서 녹았던 눈이나 비가 도로 위에 얇은 얼음막으로 다시 얼어붙는 현상이다. 이때 노면의 마찰계수는 0.5 이하로 떨어져 일반 도로보다 약 14배, 눈길보다도 6배가량 더 미끄럽다. 얇고 투명해 아스팔트 색이 그대로 비쳐 보이기 때문에 운전자가 눈으로 알아차리기 어렵다. 제동력이 거의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서 사고가 나면 피해가 커지고 치사율도 높아진다. 이 때문에 블랙아이스는 ‘도로 위 암살자’로 불린다.

최근 사고 역시 이런 특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서산영덕고속도로 사고는 단독 사고 뒤 연쇄 추돌로 피해가 커졌고, 성주 내리막 사고 역시 운전자가 결빙을 미리 인지하지 못한 채 제동에 나섰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두 사고 모두 영하권 기온과 전날 강수 이후 결빙이라는 조건이 겹쳤다.

실제로 도로교통공단이 최근 5년간 결빙 교통사고를 분석한 결과, 결빙 사고의 치사율은 교통사고 100건당 2.0명으로 마른 노면 평균(1.3명)보다 약 1.5배 높았다. 특히 교량 위에서 발생한 빙판길 사고의 치사율은 5.9명, 고가도로는 4.8명으로 마른 노면의 약 4배에 달했다.

블랙아이스 사고는 시간과 장소도 비교적 뚜렷하다. 기온이 떨어지는 늦은 밤과 이른 새벽, 안개가 끼는 오전 시간대에 사고가 많다. 장소로는 주행 속도가 빠른 고속도로와 일반국도에서 피해가 크고, 교량과 고가도로, 터널 출입구, 지하차도, 그늘진 곡선로, 하천·저지대 인근은 결빙에 특히 취약한 구간으로 꼽힌다.

문제는 이런 위험 구간이 이미 오래전부터 ‘결빙 취약 구간’으로 분류돼 왔다는 점이다. 결빙 교통사고 다발 지점 정보는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 등을 통해 공개되고 있다. 하지만 위험을 알리는 정보가 실제 현장의 관리와 예방 조치로 충분히 이어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관리 체계도 일반도로는 지방자치단체가, 고속도로는 한국도로공사가 맡고, 국도는 국토교통부와 지방국토관리청이 관리한다. 같은 결빙 위험이라도 도로 종류에 따라 대응 기준과 장비, 인력 수준이 제각각이다.

현장 대응은 여전히 사고 이후 제설에 무게가 실린다. 염화칼슘 살포나 차로 통제는 사고 뒤에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 노면 온도 센서나 자동 염수 분사 장치 같은 사전 대응 장비는 일부 구간에만 설치돼 있다. 결빙은 짧은 시간에 발생하지만, 인력 중심 대응은 새벽과 심야 시간대에 한계를 드러낸다.

전문가들은 블랙아이스 사고를 단순한 자연현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관리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결빙 취약 구간이 어디인지, 어떤 조건에서 사고가 반복되는지는 이미 데이터로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정보가 아니라 실행이라는 것이다.

서산영덕고속도로와 성주 내리막 도로에서 발생한 사고는 예외가 아니다. 위험 구간은 이미 알려져 있었고, 사고의 조건도 반복돼 왔다. 결빙은 피하기 어려운 자연현상일 수 있지만, 같은 곳에서 같은 사고가 되풀이된다면 그것은 관리의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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