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외형적 성장에 가려진 리더십의 왜곡에 빠지지 말아야

2026-01-13 13:49:11 게재

대한민국 의료기기산업은 지난 10년간 유례없는 양적·질적 성장을 동시에 거듭해 왔다. 인공지능(AI) 기반 진단 솔루션, 디지털 헬스케어, 차세대 체외진단기기에 이르기까지 우리 기업들은 ‘K-메디컬’의 저력을 글로벌 시장에서 입증해 왔다.

그러나 화려한 성과와 외형적 성장의 이면에서는 내부 갈등과 소통 부재라는 심각한 ‘조직적 균열’이 동시에 누적되고 있다. 필자가 현장에서 진행한 다양한 사례와 연구 경험을 종합해 보면, 이런 문제의 근원에는 종종 리더십의 왜곡이 자리 잡고 있다.

의료기기산업은 고도의 전문성, 엄격한 규제 준수, 생명 윤리라는 세 가지 축이 유기적으로 맞물린 분야다. 기술 완성도가 기업의 생존과 직결되다 보니 많은 경영자와 리더는 ‘무엇을 만드는가(Product)’에 집중한 나머지 ‘누가 만드는가(People)’에 대한 고민을 소홀히 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경영의 역사가 보여주듯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하는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며, 그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조직 문화다. 특히 의료기기 벤처와 중견기업처럼 리더 한 명의 영향력이 큰 조직일수록 왜곡된 리더십은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가 된다.

성공의 저주, 휴브리스 리더십

조직 내 갈등의 핵심 원인이자 성장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심리적 함정은 바로 ‘휴브리스(Hubris)’다.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유래한 이 개념은 ‘신의 영역에 도전할 만큼 오만한 자만심’을 뜻한다. 현대 경영학적 관점에서 휴브리스 리더십이란, 과거의 성공에 도취해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타인의 조언을 경멸하며, 결국 현실 감각을 상실한 채 독단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심리적 상태를 의미한다.

의료기기산업의 리더들은 대개 특정 분야의 독보적인 전문가이거나 난관을 뚫고 성공을 일궈낸 개척자다. 이런 성공 경험은 강력한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가 가장 잘 안다”는 오만함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리더가 휴브리스에 빠지는 순간 조직의 집단지성은 마비되고 전문가들의 객관적인 피드백은 차단된다. 이는 곧 제품의 안전성 간과나 전략적 판단 오류로 이어지며, 특히 의료기기 분야에서 리더의 오만은 단순한 경영 실수를 넘어 윤리적 재앙으로 번질 위험이 크다.

휴브리스 리더의 세 가지 유형

현장에서 관찰되는 휴브리스 리더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타난다.

‘전지전능형’ 리더는 자신의 전문 영역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자신의 판단이 최선이라고 믿으며 실무자의 의견을 배제한다. ‘무오류형’ 리더는 자신의 결정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고, 실패의 원인을 외부 환경이나 규제로 돌린다. ‘고립형’ 리더는 비판적 의견을 허용하지 않아 결국 주변에 찬사만 늘어놓는 예스맨(Yesman)만 남게 되고, 그 결과 조직 내부의 갈등과 균열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다.

국내외 사례가 보여주는 교훈

휴브리스 리더십의 폐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해외 사례로는 미국 의료기기 스타트업 테라노스(Theranos)를 들 수 있다.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즈는 파격적인 비전을 제시했지만, 기술적 한계를 지적한 내부 목소리를 철저히 억압했다. 리더의 자만이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독단적 문화를 만들었고, 결과는 역사적인 사기극으로 끝났다. 이는 휴브리스 리더가 어떻게 산업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리는지를 보여주는 뼈아픈 교훈이다.

국내에서도 기술특례 상장 이후 리더의 독단으로 무리한 사업 확장을 추진하다 핵심 인력이 이탈하고 자금난에 빠진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특히 임상 단계에서의 갈등을 조율하지 못하고 기술력이 시장의 요구와 동떨어진 경우, 그 기저에는 구성원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자신의 성공 방식만을 강요한 리더의 휴브리스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런 갈등은 결국 제품 품질 저하와 조직 와해로 이어지며 기업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

휴브리스를 완화하는 리더의 핵심 역량

조직학자 유진 새들러-스미스(Eugene Sadler-Smith)는 리더가 휴브리스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핵심 역량으로 △감정지능 △자기인식 △코칭 및 대화 기술 △끈질긴 경청 △질문력 △소셜 미디어의 현명한 활용 △책임 수용 △권력 앞에서 진실 말하기 등 8가지를 제시했다. 이는 의료기기 조직에서 건전한 문화를 구축하기 위한 실천적 지표가 될 수 있다.

감정지능은 구성원의 감정 반응을 깊이 이해하고 적절히 대응하게 만들며, 자기인식은 리더 스스로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 오만해지는지를 돌아보고 한계를 인정하게 한다. 코칭 및 대화 능력은 지시보다 질문을 통해 구성원의 사고를 확장하게 하고, 끈질긴 경청은 불편한 의견일지라도 끝까지 경청해 오류를 방지하는 강력한 안전장치 역할을 한다. 질문력은 기존의 가정을 끊임없이 재검토하게 만들고, 소셜 미디어의 현명한 활용은 외부 시각과 여론을 파악해 자기 확증 편향에 갇히지 않도록 균형을 제공한다. 이와 함께 책임 수용은 실패를 외부로 전가하지 않고 리더가 스스로 감당하는 태도를 의미하며, 권력 앞에서 진실 말하기는 구성원들이 상향 피드백을 자유롭게 제시할 수 있는 심리적 안정감을 조성한다.

코칭 사례로 본 변화의 가능성

실제 코칭 현장에서는 리더의 태도 변화가 조직 성과로 연결되는 사례가 관찰됐다. 한 신기술 기반 의료기기 기업의 대표는 규제 리스크를 제기한 내부 의견을 ‘혁신을 방해하는 보수적 마인드’로 간주했으나, 코칭 이후 자신의 판단 한계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리더는 먼저 “내가 모르는 규제적 관점의 취약점이 무엇인가”라고 질문하고 피드백을 수용했으며, 결과적으로 보완 조치 없이 단번에 품목 허가를 획득하는 성과를 거뒀다.

또 다른 사례에서는 완벽주의 성향의 리더가 자신의 판단 오류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구성원들에게 ‘건전한 도전’을 요청했다. 리더가 피드백 문화에 직접 참여하자 조직 분위기는 급격히 전환 됐고, 이는 전년 대비 15% 상승한 실적으로 이어졌다.

휴브리스 리더가 기억해야 할 세 가지 원칙

리더가 휴브리스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 원칙을 새겨야 한다.

첫째, 지적 겸손이다. 리더가 스스로의 한계를 공개적으로 인정할 때 조직의 집단지성은 비로소 작동한다. 둘째, 반대 의견의 제도화다. 공식적으로 이견을 제기할 수 있는 구조는 오류를 예방하는 중요한 안전장치다. 셋째, 심리적 안전감의 확보다. 구성원이 실수와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을 때 의료기기산업의 핵심 가치인 안전과 혁신이 함께 실현된다.

기술의 정점에서 다시 사람으로

의료기기산업의 궁극적 목적은 ‘환자의 치유’와 ‘인간의 행복’이다. 리더가 휴브리스를 경계하고 사람 중심의 조직 문화를 구축할 때 기술은 비로소 사회적 신뢰를 얻는다. 성장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기술의 정점에 설수록 리더는 고개를 숙여 조직과 사람을 바라봐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 의료기기산업이 진정한 혁신으로 나아가고 글로벌 리더로 도약할 수 있는 길이다.

김도균 디와이프라임 대표
김도균 디와이프라임 대표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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