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시대를 건너는 CEO들의 생존 매뉴얼
정부 압박이 규칙을 대체해
백악관 상대하는 5대 전략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가 본격화되면서, 미국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경영 환경도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이제 기업 경영의 최대 변수는 경기나 금리가 아니라 대통령의 즉각적인 개입이다. 규제, 관세, 투자, 심지어 통화정책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 판단이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는 14일(현지시간) “백악관과 기업 간 관계에서 절차는 사라지고 압박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며, 트럼프 시대를 헤쳐 나가기 위해 CEO들이 실제로 활용하고 있는 대응 전략을 ‘지침서’ 형식으로 정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신용카드 금리를 10%로 제한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요구했고, 에너지 기업들에는 베네수엘라의 붕괴된 석유 인프라 복구를 압박하고 있다. 연방준비제도(Fed) 제롬 파월 의장에 대한 형사 수사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통화정책의 독립성 논란도 다시 불붙었다. 기업 입장에서는 정책 환경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환경에서 CEO들이 가장 먼저 택한 전략은 대통령과의 ‘접점 만들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휴대전화 번호를 직접 알려주는 드문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과거 “팀 쿡은 나에게 직접 전화하는 훌륭한 경영자”라고 말한 바 있다. 다만 직접 통화가 부담스러운 경우,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이나 재무·상무 장관, 또는 백악관 실무 참모들을 통한 우회 통로를 활용하는 방식도 널리 쓰이고 있다.
두 번째 전략은 공개적인 충돌을 피하는 것이다. 엑손모빌 최고경영자 대런 우즈가 베네수엘라를 “투자 불가능한 나라”라고 언급했다가 곧바로 대통령의 반발을 산 사례는 기업들 사이에서 대표적인 경고로 꼽힌다. 반면 월마트의 더그 맥밀런은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는 기업이 떠안으라”고 공개 비판했을 때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고, 이후 추가적인 공격 대상이 되지 않았다.
세 번째는 메시지를 최대한 단순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긴 보고서를 읽지 않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CEO들은 복잡한 정책 논리를 길게 설명하기보다, 일자리 창출과 미국 내 투자 확대처럼 대통령이 중시하는 요소를 중심으로 짧고 직관적인 설명을 준비한다. 시각 자료를 활용해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전략으로 꼽힌다.
네 번째는 발언의 무대를 신중하게 고르는 방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호하는 매체를 활용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코카콜라와 일라이릴리는 주요 발표를 폭스비즈니스 방송을 통해 진행하며, 행정부와의 협력 의지를 강조했다. 이는 대통령의 발언을 정면으로 반박하기보다, 이를 기업 홍보와 연결하는 접근으로 평가된다.
마지막으로 CEO들이 공통적으로 인식한 점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모든 만남은 거래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인텔은 백악관과의 갈등 끝에 정부가 약 8900만달러 상당의 보통주를 취득하는 방식으로 위기를 넘겼다. 자유시장 원칙과 거리가 멀다는 비판도 나왔지만, 백악관은 이를 다른 기업에도 적용할 수 있는 사례로 설명했다.
블룸버그는 “규칙이 수시로 바뀌는 게임에서 완벽한 지침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CEO들은 펜이 아니라 연필로 전략을 짜고, 언제든 지울 준비를 해야 한다”고 전했다. 트럼프 시대의 경영은 예측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빠르게 적응하느냐의 문제라는 의미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