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 재건 특수 ‘슐럼버거’ 주목
100년 현지경험 지닌 유전 서비스 기업 … ‘현장에 남아 버티기’ 전략 빛났다
시장에서는 SLB가 트럼프 대통령의 베네수엘라 개입 구상 아래 가장 먼저 계약을 따낼 기업으로 거론된다. SLB는 미국 정부와 현지 파트너인 셰브론등과 베네수엘라 사업 확대를 놓고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안에 정통한 인사들은 SLB가 이미 현지 인프라와 인력을 갖추고 있어 초기 사업을 빠르게 확장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번 주가 급등의 직접적 계기는 지난 1월 3일 미국이 니콜라스 마두로 전 베네수엘라 지도자를 축출한 뒤,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을 사실상 관리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은 데 있다. 미국은 향후 1000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유도해 붕괴된 석유 생산 인프라를 복구하겠다는 계획이다. 투자자들은 SLB를 비롯한 유전 서비스 기업들이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수혜를 입을 것으로 보고 있다.
SLB는 과거 슐럼버거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던 회사로, 유전 서비스 업계 세계 1위다. 도로와 파이프라인 건설, 시추와 원유 생산은 물론, 복잡한 유전 개발에 필요한 첨단 기술까지 제공한다. 특히 베네수엘라에는 100년 넘게 진출해 있어 어떤 경쟁사보다 현지 사정에 밝다.
실제로 같은 기간 셰브론 주가는 5% 올랐고, 경쟁사인 할리버튼(HAL)은 10%, 베이커휴즈(BKR)는 4% 상승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SLB의 입지가 단연 앞선다는 평가가 많다.
SLB의 강점은 ‘남아 있는 기업’이라는 점이다. 이 회사는 미국과 관계가 악화된 국가에서도 철수하지 않는 전략으로 유명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도 러시아에 잔류해 논란이 됐고, 베네수엘라에서도 우고 차베스와 마두로 정권 시절 국유화와 제재를 겪으면서도 사업을 유지했다. 본사는 휴스턴에 있지만 법적 본사는 네덜란드령 퀴라소에 있어 미국 제재 하에서도 상대적으로 활동 여지가 넓다.
경쟁사들이 2019년 미국의 제재 강화 이후 베네수엘라에서 발을 뺐을 때도 SLB는 규모를 줄이면서 버텼다. SLB는 셰브론의 베네수엘라 사업을 뒷받침하는 핵심 협력사이지만, 제재가 풀리면 다른 석유 기업들과도 곧바로 거래할 수 있는 독립 유전 서비스 업체다.
지난주 백악관 업계 간담회에서 올리비에 르 푸슈 SLB 최고경영자는 셰브론의 지원 아래 베네수엘라 현지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현지에 7억달러 규모의 장비와 인력을 이미 배치해 두고 있어, 허가만 나오면 빠르게 사업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미 재무부도 제재 완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은 이르면 이번 주 안에 일부 제재를 완화할 수 있다고 밝혀, 할리버튼과 베이커휴즈도 베네수엘라 진출 기회를 노릴 수 있게 됐다. 할리버튼 최고경영자는 해외자산통제국 허가만 확보되면 미국 기업의 복귀는 신속히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변수도 있다. SLB는 수익성 개선을 중시하며 자본 지출을 5% 안팎으로 낮게 관리하고 있어, 베네수엘라 사업 확대 역시 단계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엑손모빌 등 일부 메이저 석유 기업들도 미국 정부의 재정·법적 보장이 없이는 대규모 투자를 꺼리고 있다.
그럼에도 시장에서는 베네수엘라 유전에 대한 데이터와 디지털 기술, 인공 채유 장비를 갖춘 SLB가 재건 초기 국면에서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