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이 비정상” 목소리 격앙된 오세훈
당 쇄신안 ‘환영’…한동훈 제명 ‘뒤통수’
“출마도 장담 못해” 지도부와 긴장 고조
오세훈 서울시장이 새해 들어 당과 지도부를 향해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간 국민의힘을 향해 “잘해보길 바란다”는 수준의 관리형 발언을 이어왔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비정상’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며 당의 노선을 정면으로 문제 삼고 있다. 지방선거를 1년여 앞둔 시점에서 중도 확장을 가로막는 당의 우경화에 더는 침묵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1일 열린 당 신년 모임에서 오 시장은 장동혁 대표를 면전에서 직격했다. 그는 “이제는 더 이상 못 참겠다”며 당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고 비판했다. 당 지도부를 앞에 두고 한 이 발언은 사실상 공개 경고로 해석됐다. 이후 15일에는 윤리위원회의 한동훈 전 대표 제명 의결 소식이 전해지자 SNS에 글을 올려 “당이 비정상의 길을 가고 있다”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쇄신안을 발표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당 분열을 자초하는 결정을 내린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오 시장의 발언 수위가 고조되는 것은 여론 지형과 무관하지 않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서울시장 선거 가상대결은 오차범위 내 접전이거나 일부 조사에서는 여당 후보가 앞서는 결과도 나타나고 있다. 서울 민심의 핵심인 중도층 이탈이 이어질 경우, 재선 가도 역시 장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작용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정치권에선 오 시장이 공개 경고 수준의 비판에 나선 것은 ‘뒤통수’를 맞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가 쇄신안을 발표한 뒤 오 시장은 “환영한다”며 당에 힘을 싣는 메시지를 내놨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윤리위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 제명 의결이 나왔다. 오 시장 주변에선 “당에게또다시 뒤통수를 맞았다”는 말이 나왔다. 당직자들과 일부 보수 유튜버들은 당을 비판한 오 시장을 향해 되레 맹공을 퍼부으며 양측 갈등이 노골화됐다.
정치권에서는 오 시장이 이번만큼은 당에 힘을 싣거나 뒷짐지고 상황을 관망하기 어려운 국면에 들어섰다는 관측이 나온다. 오 시장은 지난 조기 대선 국면에서 유력 후보로 거론됐으나, 탄핵에 대한 입장을 둘러싼 입장 번복으로 결국 출마를 접었다. 윤석열 지키기로 변질된 국민의힘 대선 주자 선출 과정이 첫번째 원인이었지만 불법 계엄과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진 대선에서 헌재 판결 및 다수 여론과 어긋난 태도가 치명적 한계로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 같은 경험은 오 시장이 당의 극우화를 더 이상 좌시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배경으로 꼽힌다. 보수 진영 일각에서 “쇄신안 환영에 또 속았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오 시장과 가까운 개혁보수 성향 김재섭 의원이 고성국 유튜버의 ‘한동훈 다음은 오세훈 축출’ 발언에 대해 “정신 나간 소리”라고 공개 반박한 것 역시 이 같은 기류를 반영한다는 분석이다.
다만 오 시장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제한적이다. 국회 내 확실한 교두보가 없는 데다, 현직 지자체장 신분에서 탈당이나 신당 창당은 선택지가 되기 어렵다. 이미 이준석 대표의 개혁신당이 존재하는 점도 변수다. 그럼에도 당의 극우화를 우려하는 보수 진영 인사들 사이에서는 “탈당 혹은 당을 깨는 수준의 결단 없이는 국민의힘 후보로 지방선거를 치르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장 대표의 강경 행보에는 오 시장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보수 진영 차기 대선 주자 구도에서 오 시장이 위협적인 경쟁자라는 점에서다. 일부에서는 이 흐름이 이어질 경우, 당이 선거 경쟁력보다는 내부 결속에 치중해 서울시장 후보로 나경원 전 의원을 내세울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정치권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 시절 오 시장은 정부와 각을 세우기보다 정권에 힘을 실어주는 쪽을 택했고 그 결과 당은 계엄과 내란이라는 비상식적 국면을 거쳐 정권을 내줬다”며 “오 시장이 이번에도 미온적인 태도를 보일 경우, 보수 진영 리더로서 입지뿐 아니라 서울시장 선거 역시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