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부펀드 ‘세금 면제’ 손본다

2026-01-19 13:00:16 게재

실행되면 미국내 사모대출·사모투자에 직격탄 … 국민연금도 영향권

미국이 외국 국부펀드와 공적 연기금에 적용해 온 세금 면제 제도를 재검토하고 있다. 미국 국세청(IRS)이 세법 해석을 바꿔, 국부펀드의 일부 미국 투자 활동을 과세 대상으로 전환할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다. 쟁점은 세율 인상이 아니라, 무엇을 ‘투자’로 보고 무엇을 ‘상업 활동’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기준이다.

1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IRS가 손질에 나선 조항은 미국 세법 조항 892(Section 892) 다. 이 조항은 외국 정부와 그가 통제하는 기관, 즉 국부펀드와 일부 공적 연기금이 미국에서 벌어들인 소득에 대해 원칙적으로 세금을 내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면세는 국채나 상장주식처럼 공개 시장에서 이뤄지는 ‘투자 활동’에 한정되며, ‘상업 활동’으로 분류될 경우 즉시 과세 대상이 된다.

그동안 이 경계는 비교적 명확했다. 미국 국채와 회사채, 상장주식 투자는 수동적 투자로 인정돼 면세 혜택을 받아 왔다. 반면 외국 정부가 기업 운영이나 영업 활동에 직접 관여하는 경우는 상업 활동으로 분류됐다. 국부펀드가 미국 자본시장에서 큰 세금 부담 없이 활동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러나 IRS는 이 경계선을 다시 그리겠다는 입장이다. 핵심은 국부펀드가 기업에 직접 대출을 제공하거나 비상장 기업에 직접 지분을 투자하는 경우를 더 이상 단순한 투자로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기존에는 투자로 간주되던 일부 행위를 상업 활동으로 재분류할 수 있도록 해석 범위를 넓히겠다는 의미다. 특히 사모대출(private credit)과 비상장 기업에 직접 투자하는 사모펀드(private equity·PE)가 주요 대상이다.

사모대출은 이미 미국 기업 금융의 핵심 자금줄로 자리 잡았다. 데이터업체인 글로벌 SWF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전 세계 사모대출 자산 가운데 약 5500억달러가 국부펀드와 공적 연기금 등 국가 통제 투자자 손에 있다. 이는 전체 사모대출 시장의 약 4분의 1에 해당한다.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미국 기업에 대한 대출이다.

문제는 사모대출이 구조상 유동성이 매우 낮다는 점이다. 대출 만기가 길고 거래가 공개 시장에서 이뤄지지 않아 중도에 현금화하기 어렵다. 지난해 미국 중고차 금융업체 트라이컬러와 소비재 기업 퍼스트브랜드의 파산 사례에서 보듯, 차입 기업의 신용도가 흔들릴 경우 회수는 구조조정이나 장기 협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세금 부담이 커지면 국부펀드가 신규 투자를 꺼릴 가능성이 높다. 이는 기존 투자자들이 자산을 회수하거나 만기를 연장하는 데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사모투자도 마찬가지다. 글로벌SWF에 따르면 지난해 국부펀드의 미국 내 직접 사모투자 규모는 730억달러로, 전년 대비 3배 이상 늘었다. 이 가운데 약 3분의 2가 공동투자였다. 사모펀드와 함께 비상장 기업에 투자하며 수수료를 줄이고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다.

하지만 IRS는 공동투자에서 흔히 포함되는 투자자 권한에도 주목하고 있다. 기업 매각 시 협의권이나 전략 변경에 대한 발언권처럼 통상적인 권한도, 경우에 따라서는 ‘실질적 통제력’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분율이 낮더라도 기업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면 상업 활동으로 간주돼 과세 대상이 될 수 있다.

다만 모든 미국 투자가 과세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IRS는 미국 국채와 회사채, 상장주식처럼 공개 시장에서 이뤄지는 전통적인 주식·채권 투자는 여전히 투자 활동으로 분류돼 면세 대상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국부펀드가 금융기관이나 기업 경영에 가까운 역할을 하는 투자 방식이다.

이번 변화는 국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민연금공단은 국제적으로 국부펀드 성격의 공적 연기금으로 분류된다. 정확한 투자 금액을 자산군과 국가별로 구분해 파악하기는 어렵다.

다만 국민연금의 전체 자산 가운데 대체투자 비중이 15%를 웃돌고, 이 중 70% 이상이 해외 투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해외 대체투자 규모만 150조원 안팎에 이른다. 해외 대체투자 가운데 사모투자 비중이 약 100조원으로 가장 크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사모투자 노출만 해도 최대 60조원 수준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가운데 13%는 프로젝트 파이낸싱 형태로 투자돼, 단순 펀드 출자보다 투자 구조에 직접 관여하는 성격이 강해 상대적으로 과세 위험이 더 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모대출의 경우 직접 대출보다는 펀드 출자 형태가 중심이지만, 역시 해외 대체투자 범주에 포함돼 있어 892 조항 해석이 달라질 경우 일정 수준의 세금 부담 위험을 안고 있다는 평가다.

FT는 이번 조치가 국부펀드와 공적 연기금의 미국 투자 전략을 바꿀 수 있다고 전했다. 직접 대출이나 공동투자보다, 보다 수동적인 펀드 투자로 이동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IRS는 이 개정안에 대해 2월 13일까지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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