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낙동강 물개구리밥이 고사리와 친척이라니

2026-01-20 13:00:01 게재

해마다 겨울이면 우리 집 부엌에는 짙은 갈색 실뭉치 모양의 말린 고사리가 있었다. 외할머니가 손톱으로 일일이 끊어서 말린, 전라도 부안의 외가에서 건네 온 물건이었다. 한식날 성묘 가는 길목에서 금관악기 모양으로 구부러진 고사리 어린잎을 보면 필자도 외할머니가 그러셨듯 엄지와 검지 손톱으로 고사리순을 따곤 했다.

고사리는 양치(羊齒)식물이다. 이름의 유래인 양의 이빨을 본 적은 없으나 톱니 모양의 푸른 고사리 잎과 늦가을 마른 잎 뒤에 쭉 늘어선 고사리 포자의 섬뜩한 정렬을 뚜렷이 기억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필자는 양치류를 동물의 양서류와 등치시킴으로써 물을 헤엄쳐 가야 하는 개구리와 고사리 정자의 성생활을 떠올린다. 개구리나 고사리는 물을 멀리 떠나서는 사는 일이 괴롭다. 양치류는 그늘지고 습한 곳을 골라 자신의 성세를 누리지만 인간은 그들의 조상이 한때 물속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자주 잊곤 한다.

15억년 전 정체가 분명하지 않은 어떤 조류가 파도를 타고 떠돌던 남세균을 집어삼키고 소화불량의 거북함을 이겨낸 뒤 한세월을 부유하다 약 5억년쯤 전에 바닷가 어귀에 닿았다. 현재 약 50만종에 이르는 식물은 그렇게 지구 전체 생물량의 약 80%를 차지하는 우점종이 되었다. 하지만 식물이 하는 일은 예나 이제나 한결같다. 태양 빛을 에너지 삼아 바닷물에 녹아 있거나 대기에 섞여 있던 이산화탄소 기체를 눈에 보이는 먹을 양식으로 바꾸는 작업을 잠시도 쉬지 않는 것이다.

질소고정세균과 공생하는 유일한 식물

그러려면 식물은 반드시 물이 필요하다. 물은 여러 벌의 이산화탄소를 한데 그러모을 접착제 역할을 하는 전자의 공급원이기 때문이다. 식물은 뿌리를 진화시켜 바다에서는 거저 얻었음이 분명한 물을 찾아 땅속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떤 식물은 생각을 바꿔 아예 자신이 거처를 물로 바꿔버렸다.

물개구리밥(Azolla)이 그 주인공이다. 이 식물은 다년생 양치류로 가끔 땅에도 뿌리를 내리지만 대개 호수나 강에 산다. 종류도 많지 않아 7종에 불과한 물개구리밥 속 식물은 생물학자가 총애하는 생명체다. 왜냐하면 이들은 질소고정세균과 공생하는 유일한 식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약 8000만년 전 물개구리밥은 몸 안의 특수주머니에 남세균을 꾀어 들인 다음 입구를 틀어 막아버렸다.

야생에서 남세균 무리는 초록 염주들 사이에 무색 진주알이 이따금 하나씩 끼어든 목걸이를 닮았다. 초록색 세포 안에는 빛을 빨아들이는 깔때기 단백질이 듬뿍 들었고 무색 진주알에는 놀랍게도 공기 중의 질소를 생명체가 쓸 수 있는 형태로 고정하는 효소가 그득하다. 이렇듯 남세균은 탄소와 질소를 고정하는 생명체 물질대사의 2관왕이다.

식물은 기꺼이 남세균을 받아들였지만 안타깝게도 무색 진주알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핵산과 단백질 구성 요소인 질소를 얻기 위해서는 번개나 질소고정세균에게 신세를 지는 고단한 처지가 되었다. 그 결과 질소 먹이사슬이 생겨났다. 질소고정세균은 질소를 고정하고, 식물은 고정된 질소를 밖에서 얻어야만 걱정 없이 살 수 있다. 인간은 이도 저도 못 하는 완전 종속생명체이다. 그러니 인간이 콩과 식물의 뿌리에 든 세균을 눈독들이듯 물개구리밥 주머니를 탐내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지구상의 수많은 생명체 가운데 질소를 고정하는 존재는 그리 많지 않다. 위에 언급한 질소고정세균, 콩과 식물, 그리고 물개구리밥이 거의 다다. 왜 식물은 질소를 고정하는 기술을 수용하지 못했을까? 잘 모른다. 하지만 한가지는 확실하다. 질소를 고정하는 작업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주변에 산소가 있으면 질소고정효소가 곧바로 작동을 멈추기 때문이다. 이는 남세균의 무색 진주알 세포막에 산소 투과성이 없고 뿌리혹에 산소 출입을 가로막는 보초병 단백질이 나한처럼 서 있는 연유다.

그러므로 대기와 바닷속에 산소의 양이 늘어날수록 유기질소를 만드는 생명체의 입지는 수그러들 수밖에 없다. 이런 생명의 딜레마를 해결하고자 인류는 암모니아 합성법을 고안했고 중국과 베트남에서 벼농사를 짓는 농부들은 물개구리밥 농장을 설립했다. 질소비료 물개구리밥을 대를 이어 면면히 유지하기 위해 농부들은 영하로 내려가는 겨울과 35℃가 넘는 여름을 무사히 넘기는 일에 공을 들인다.

한반도에 퍼지는 물개구리밥과 공생하기

작년 크리스마스 즈음 낙동강 수면에 한반도에선 처음으로 물개구리밥이 대규모로 퍼졌다. 겨울이 춥지 않고 물이 느리게 흘러 이 식물이 자랄 최적의 조건이 형성되었던 탓이다. 어떤 사람은 이 현상을 적조의 가을 버전이라며 개탄한다. 하지만 물개구리밥은 죄가 없다. 다만 그들과 함께 살아갈 숙제가 우리 앞에 새롭게 던져졌을 뿐.

김홍표 아주대학교 약학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