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0억유로 EU 보복관세, 대상 품목 결정
보잉부터 버번까지 미 제품
유럽내 대체 쉬운 품목으로
파이낸셜타임스(FT)는 EU가 지난해 이미 준비해둔 보복 관세 목록을 현실화할 준비를 마쳤다고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목록은 원래 발효될 예정이었으나 미·EU 무역 휴전 합의로 2월 7일까지 시행이 미뤄진 상태다. 문제는 2월 7일이 지나면 자동으로 발효된다는 점이다. 회원국 과반이 다시 연기를 결정하지 않는 한, 보복 관세는 그대로 현실이 된다.
FT가 확보한 목록에는 미국을 상징하는 제품들이 빼곡하다. 보잉 항공기, 자동차, 버번 위스키, 대두는 물론이고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 리바이스 청바지, 럭키 스트라이크 담배까지 들어있다. 기계류, 의료기기, 화학·플라스틱, 전기장비도 타격권이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곳은 보잉이다. EU는 미국산 항공기에 25% 관세를 매길 계획이다. 지난해 EU의 미국산 항공기 수입액만 110억유로인데,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보잉 제품이다.
EU가 품목을 고른 기준은 명확했다. 우선 EU 소비자가 타격을 입지 않도록, 미국산이 아니어도 대체 가능한 제품을 골랐다. 버번 대신 스카치위스키나 아이리시위스키를 마시면 그만이라는 계산이다.
동시에 미국 정치권 급소도 노렸다. 대두 재배가 활발한 루이지애나주는 공화당 핵심 인사들의 지역구다.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과 스티브 스컬리스 원내대표 모두 이 지역 출신이다.
이그나시오 가르시아 베르세로 전 EU 고위 통상관료는 “보복 목록의 핵심 기준은 EU가 미국에 의존하지 않는 품목을 고르는 것”이라며 “부차적으로는 미국 내 즉각적인 정치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EU 집행위원회는 관세 채택을 위해 회원국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 일부 국가는 미국의 맞보복을 우려해 특정 품목을 목록에서 빼 달라고 요구해 왔고, 특히 주류·와인처럼 민감한 분야가 거론돼 왔다. 초기 목록에서 이미 200억유로 넘는 품목이 제외된 것으로 전해졌다.
EU는 알루미늄 고철 수출 통제에도 합의했다. 미국은 EU산 알루미늄 고철을 수입해 재활용 제품을 만드는데, 이 공급을 막겠다는 것이다.
한편 EU 내부에서는 이른바 ‘무역 바주카포’로 불리는 통상위협대응조치(ACI, Anti-Coercion Instrument)까지 꺼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2023년 도입됐지만 한 번도 사용된 적 없는 ACI는 미국 빅테크 기업 등의 EU 단일시장 접근을 제한할 수 있는 강력한 장치로 평가된다. 지식재산권을 박탈하거나 넷플릭스·할리우드 영화에 관세를 매기고, 미국 기업의 정부조달 참여를 막는 방안, 나아가 미국 은행의 금융시장 접근을 차단하는 조치까지 가능하다고 알려졌다.
프랑스는 ACI 발동을 밀고 있지만, 다른 회원국들은 신중하다. EU 경제와 소비자에게 돌아올 충격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벤처캐피털이나 클라우드 컴퓨팅처럼 미국 말고는 대안이 없는 분야도 문제다. 게다가 절차도 복잡하다. 집행위가 조사하고, 미국과 협상한 뒤, 회원국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최소 수주가 걸린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