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국 국채 보유 유럽국가들에 제재 카드
미 국채 매도 거론 확산속
전문가 경고성 예측 나와
“팔면 달러 흔들리고,
안 팔아도 신뢰 손상”
유럽을 중심으로 “보유 국채를 계속 들고 있는 것 자체가 위험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실제 매도 가능성과 그 파급 효과를 둘러싼 논쟁도 커지고 있다.
블룸버그는 21일(현지시간) 독일 코메르츠방크의 외환 전략가 마이클 피스터의 분석을 인용해, 미국과 유럽의 갈등이 더 악화될 경우 유럽연합(EU) 국가들이 보유한 미국 국채가 제재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전했다. 피스터는 “갈등이 더 격화되면 해당 국가들이 미국 국채를 보유하는 것이 점점 더 위험해질 수 있다”며 “제재가 현실화될 경우 투자자들은 이 채권을 팔고 싶어도 팔지 못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동시에 “만약 이런 우려로 국채를 매도한다면, 그 피해는 달러에도 돌아갈 것”이라며 “팔아도 문제, 안 팔아도 문제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국채가 더 이상 ‘정치와 무관한 안전자산’으로 인식되지 않을 경우,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 자체가 서서히 잠식될 수 있다는 경고다.
이번 논란의 배경에는 그린란드를 둘러싼 미국과 유럽 간 외교적 긴장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에 대한 통제권을 거론하며 유럽을 압박하자, 유럽 내부에서는 관세 보복뿐 아니라 미국 금융자산을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블룸버그는 “유럽이 보유한 미국 자산은 약 10조달러 규모”라며,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국채와 주식, 회사채라고 전했다.
다만 실제로 국채를 ‘무기화’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9일 보도에서 유럽 나토 국가들이 보유한 미국 국채만 2조8000억달러에 달하지만, 이를 일괄적으로 매도해 미국에 압박을 가하는 것은 현실성이 낮다고 지적했다.
FT는 “이 자산의 대부분은 정부가 아니라 연기금, 보험사, 은행 등 민간 부문이 보유하고 있다”며 “정치적 목적을 위해 투자 결정을 강제로 바꾸려면 각국의 법과 제도를 바꿔야 하는데, 이는 수년이 걸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린 속도의 셀 아메리카(Sell America)’ 흐름은 이미 진행 중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FT는 “미국 자산에 대한 신규 매입을 늦추거나, 달러 비중을 점진적으로 줄이는 것만으로도 시장에는 의미 있는 신호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덴마크의 연기금 아카데미커펜션은 보유 중이던 약 1억달러 규모의 미국 국채를 이달 말까지 처분하겠다고 밝혔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대규모 매도보다는 ‘신뢰 훼손’ 자체가 가장 큰 위험이라고 본다. 미국 국채는 규모와 유동성 면에서 대체재가 없는 자산이지만, 제재 가능성이 거론되는 순간부터 중앙은행과 장기 투자자들은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고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FT는 “미국은 막대한 재정·경상 적자를 외국 자본에 의존해 메워 왔다”며 “국채가 정치적 압박 수단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면, 그 비용은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 자신에게 누적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관건은 미국이 어디까지 나아갈 것인가다. 현재까지 유럽 국가를 직접 겨냥한 금융 제재가 실제로 거론된 적은 없지만, 시장은 이미 ‘가능성’만으로도 반응하고 있다. 달러와 미 국채가 쌓아온 신뢰는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지만, 한번 금이 가면 회복에는 훨씬 더 긴 시간이 걸린다는 점에서 이번 논란은 단순한 외교 갈등을 넘어 달러 체제의 구조적 위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