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금값…달러 패권에 경고음

2026-01-23 13:00:06 게재

달러가치 점진적 침식 신호

전 IMF 경제학자들의 경고

영국 런던 해튼 가든에 있는 베어드앤코 매장에 전시된 영국 금괴와 금화. 로이터=연합뉴스
최근 금값 급등은 단순한 원자재 가격 변동이 아니다. 중앙은행과 투자자들이 달러 체제에서 한 발 물러서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화폐 가치 훼손 우려가 커지면서, 달러 패권을 떠받쳐온 신뢰가 시장에서 흔들리고 있다.

미국 달러는 여전히 세계 금융의 중심 통화다. 무역 결제, 외환보유액, 국제 금융거래에서 달러의 비중은 압도적이다. 그러나 최근 국제 금융시장은 달러의 지위를 더 이상 당연한 전제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그 변화는 금 시장에서 가장 먼저 감지되고 있다.

하버드대 교수이자 전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케네스 로고프는 21일(현지시간)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에서 달러의 미래를 ‘붕괴’가 아닌 ‘점진적 침식’으로 표현했다. 그는 미국의 재정적자 확대와 정치적 갈등, 금융 제재의 반복적 사용이 달러에 대한 신뢰를 서서히 약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에서는 이를 ‘화폐 가치 훼손(debasement)’ 우려로 받아들이고 있다. 정부 부채가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물가 상승이나 통화 가치 하락을 통해 부담을 줄이려 할 수 있다는 걱정이다.

이런 환경에서 투자자와 중앙은행은 달러 대신 금을 선택하고 있다. 금은 이자를 주지 않지만, 어느 나라의 정책에도 직접적으로 좌우되지 않는 자산이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의 21일 보도에 따르면 중앙은행들은 최근 몇 년간 금 매입을 크게 늘렸다. 특히 미국과 정치·외교적으로 갈등을 겪는 국가들 사이에서 달러 자산 회피 움직임이 뚜렷하다. 러시아는 제재 이후 달러 자산 접근이 제한되자 금 보유를 늘렸고, 중국도 제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외환보유액에서 금 비중을 꾸준히 높이며 달러 의존도를 줄이고 있다.

유로는 달러의 대안으로 자주 거론되지만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유로화는 국제 결제와 준비자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나, 공동 재정 체계가 없고 안전자산이 분산돼 있다. 재정 위기 가능성이 반복적으로 거론되는 점도 유로화의 신뢰를 제약하는 요인이다. 이 때문에 유로화는 달러를 대체하기보다는 보완하는 통화로 평가받고 있다.

IMF의 전 수석 이코노미스트이자 현재 수석 부총재인 기타 고피나트는 달러의 즉각적인 위기를 부정했다. 그는 달러 비중이 줄어드는 현상은 사실이지만, 이는 특정 통화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통화와 금으로 나뉘는 ‘분산’이라고 설명했다. 고피나트는 기축통화 지위의 핵심은 부채 규모가 아니라 제도와 정책에 대한 신뢰라고 강조했다.

금값 전망은 이런 흐름을 반영한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중앙은행과 민간 투자자들의 금 매입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2026년 말 금값 전망치를 온스당 5400달러로 상향했다.

로고프는 달러의 가장 중요한 경고 신호로 위기 시 안전자산 역할 상실을 꼽았다. 금융 불안 국면에서 달러와 미국 국채가 동시에 약세를 보인다면 신뢰에 균열이 생겼다는 의미라는 설명이다. 다만 그는 아직 그런 현상이 구조적으로 굳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로고프는 달러의 가장 중요한 경고 신호로 위기 시 안전자산 역할 상실을 꼽았다. 그는 미국이 달러의 지위를 활용해 경제 제재나 관세를 지속적이고 무분별하게 사용할 경우, 달러에 대한 신뢰 훼손이 더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타 고피나트 역시 기축통화는 신뢰의 문제이며,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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