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발 ‘대분기’에 쪼개지는 지구촌
미국은 성장·유엔은 격차관리에 방점 … ‘산업혁명 필적할 기술’ 이견 없어
인공지능(AI)을 둘러싼 국제사회 인식이 뚜렷하게 갈라지고 있다. AI가 산업혁명에 필적하는 범용기술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그 파급 효과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정책으로 대응할지를 놓고 미국과 유엔의 시선은 정반대다. 역사적 개념인 ‘대분기(Great Divergence)’를 공유하면서도 전혀 다른 미래를 그리고 있다.
‘대분기’란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서유럽과 북미가 급속한 산업화를 통해 아시아·아프리카 등 비산업 지역과 소득·생산성 격차를 크게 벌린 현상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기술 자체보다도 그 기술을 흡수할 수 있었던 에너지·자본·제도 접근성의 차이가 격차를 고착화했다는 진단이다.
미국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는 최근 발표한 ‘인공지능과 대분기(Artificial Intelligence and the Great Divergence)’ 보고서에서 AI를 세계경제의 성장 경로를 다시 갈라놓을 핵심 변수로 규정했다. 보고서는 AI가 총요소생산성(TFP)을 끌어올리며 국가별로 차이가 나는 투자·컴퓨팅·에너지 역량에 따라 성장속도가 구조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대분기’는 피해야 할 위험이 아니라 관리하며 주도해야 할 경쟁의 결과라는 것이다.
“AI가 격차를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누가 그 격차의 상위에 설 것인가”에 관심이 집중된다. 실제로 보고서는 2024년 기준 미국의 민간 AI 투자액이 1090억 달러로 중국과 유럽연합(EU)을 크게 앞섰고 글로벌 AI 컴퓨팅 용량의 약 74%가 미국에 집중돼 있다고 지적했다. AI 투자는 ‘미래의 잠재력’이 아니라 이미 현재의 거시경제 변수라는 평가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데이터센터 인허가 가속, 에너지 공급 확대, 규제 완화, AI 칩과 기술 수출 전략은 AI 경쟁을 국가 총력전으로 인식한 결과라는 것이다. 보고서는 AI 경쟁이 개별 기업의 혁신 문제가 아니라 전력·에너지·반도체·자본을 포괄하는 지정학적 경쟁으로 전환됐다고 분석했다.
반면 유엔개발계획(UNDP)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 해석한다. UNDP는 지난 연말 공개한 ‘제2의 대분기(The Next Great Divergence)’와 1월 8일 분석 글에서 AI가 정책적 개입 없이 확산될 경우 산업혁명 당시보다 더 복합적인 격차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경고했다. UNDP는 같은 국가 안에서도 도시와 농촌, 대기업과 중소기업, 고숙련과 저숙련 노동자, 남성과 여성 사이의 격차가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을 문제삼는다. AI는 전력과 인터넷, 교육과 디지털 역량에 접근할 수 있는 집단에게 먼저 혜택이 집중되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에 대한 시각 차이는 특히 선명하다. CEA는 AI로 인한 고용 충격을 단기적 조정과정으로 본다. 생산성 향상이 비용 절감과 가격 인하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수요확대와 고용증가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제번스의 역설’을 근거로 든다.
반면 UNDP는 AI 자동화에 노출된 일자리가 비공식·저임금·여성 노동에 집중돼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재교육과 사회적 안전망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기술전환은 곧바로 불평등 확대로 이어질 수 있고, 국가 내부의 ‘보이지 않는 대분기’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두 시각이 교차하는 지점은 전력과 인프라다. UNDP는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2030년까지 현재의 거의 세 배로 늘어날 수 있다며 인프라가 취약한 국가는 AI 확산의 환경 비용만 떠안을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