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 지배구조, 단기 이익 극대화에 편향”…“소비자보호 위협”
금감원 내부보고서, 문제점 질타 … 개선 방안 제시
“금융사 임원, 금융 관련 전문성 요건 법제화 필요”
사외이사 추천에 ‘주요 기관투자자 참여’ 방안도
현행 금융회사 지배구조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개선방안을 제시하는 보고서가 금융감독원 내부에서 작성됐다.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이 금융회사 지배구조 선진화 TF를 가동하고 8대 은행지주를 상대로 특별점검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작성된 것이다.
26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감원 내부 업무시스템에는 최근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정책연구’ 보고서가 게시됐다.
최근 몇 년간 잇따라 발생한 대규모 불완전판매 사례 등을 적시하면서 지배구조 문제를 비판했다. 보고서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가 금융소비자 보호보다는 단기적 이익과 주주 이익 극대화에 편향돼 있으며, 특히 이사회와 감사 기능이 경영진에 대해 실질적인 견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현실과 연결된다”며 “이처럼 지배구조의 형식적 운영과 내부통제 시스템의 비실효성은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협하는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금융회사 CEO 연임과 관련해 ‘부패한 이너서클’이라고 지적하고 이찬진 금감원장도 금융지주 회장의 셀프연임을 비판하면서,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을 명분으로 금융권 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교체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 보고서는 CEO 인선 보다는 현재 금융회사 지배구조의 문제점이 왜 대규모 금융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중점을 두고 개선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금융회사처럼 사회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기관에서 내부통제와 책임경영이 미흡할 경우 그 파급효과는 개별 회사 차원을 넘어 금융시스템 전반의 리스크로 확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금융회사의 지배구조는 단순히 자율적 통치 메커니즘이 아니라, 공공성과 규제의 정당성을 담보하는 기반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를 작성한 홍영호 국장(보험개발원 파견협력관)은 금감원의 공식입장이나 견해가 아니라고 밝혔지만 ‘지배구조 선진화 TF’ 논의 과정에서 관련 내용이 검토될 가능성이 있다.
◆낙하산 막는 전문성 요건 명시 = 보고서는 첫 번째 개선 과제로 ‘임원자격 확인제도’를 제시했다.
최근 은행지주 중심으로 지주회사가 발전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전문성이 결여된 인사가 지주회사의 자회사인 보험회사 증권회사 등의 최고경영진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례를 찾아 볼 수 있으며 과거 은행 자회사 부실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전문성이 결여된 인사의 낙하산 임명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은 감사위원에 대해서만 구체적인 전문성 요건을 명시하고 있다. 회계, 재무, 법률 등 관련 분야의 지식과 실무경력을 갖춘 인물이어야 하며, 최소 1명은 회계 또는 재무전문가로 지정돼야 한다.
하지만 대표이사나 사내 이사 등 일반 임원에 대해서는 법령상 자격요건이 추상적이고 구체적인 판단 기준이나 평가 체계가 없다.
보고서는 “과거 은행법, 보험업법 등에서는 임원자격요건에 전문성 요건이 존재했던 점을 고려할 때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도입 당시 이러한 부분이 삭제된 것은 제도의 큰 흠결”이라며 “임원의 전문성 요건을 금융업 경력 5년 이상, 공인회계사·CFA·변호사 등 전문자격 보유자, 리스크관리 또는 내부통제 분야 실무 경험자 등으로 기준을 구체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임원 후보자의 전문성, 도덕성, 리더십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기록·공시하도록 제도화하는 방안과 금감원 차원에서 모든 금융회사에 적용 가능한 ‘임원 자격 검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적격성 평가 기준 및 사례집 발간 필요성도 언급했다.
미국 등 주요국에서 감독당국이 금융회사 검사시 CEO, CFO, CRO 등 주요 C-level 임원을 직접 인터뷰하는 절차를 운영하면서 경영진의 자질을 실질적으로 점검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보고서는 “이를 통해 감독당국은 임원이 실제로 해당 금융업에 대한 지식과 경험, 내부통제 체계에 대한 인식을 갖추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으며, 이는 회사의 리스크 관리 수준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며 “또한 감독당국과 경영진 간의 소통을 통해 감독당국의 정책방향과 기대 수준이 공유됨으로써, 기업은 보다 투명하고 책임 있는 경영을 수행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감사위원회 기능 저하, 견제 기능 수행 못해 = 두 번째 개선 과제로는 감사위원회 전문성과 실질적 기능 강화를 꼽았다.
보고서는 “감사위원회가 내부감사 책임자에 대한 인사권, 업무지시권, 평가권 등을 실질적으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으며, 일부 사외이사가 사실상 거수기로 전락하면서 감사기능의 독립성과 실효성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감사위원회의 기능 강화를 위해 사외이사 후보자 추천 과정의 개편도 제안했다. 현재 일부 금융회사에서는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가 경영진의 영향력 아래에서 운영되며, 사실상 경영진에게 우호적인 인물이 사외이사로 추천되는 구조가 고착화돼 있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언급한 ‘부패한 이너서클’, 이찬진 원장이 말한 ‘참호구축’과 같은 맥락의 지적이다.
보고서는 “사외이사후보추천권에 대한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외부 추천인단의 참여를 확대하고, 국민연금 등 주요 기관투자자나 외부이해관계자가 독립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통로를 마련해야 한다”며 “나아가 사외이사의 전문성을 보완하기 위한 직무교육 의무화, 이사 자격평가제도 도입, 외부 전문가의 자문 참여 확대 등이 실질적 개선 방안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독립적인 상근감사의 임명 필요성도 밝혔다. 다만 상근감사의 임면 및 보수를 이사회 중 독립성을 가진 위원회나 주주총회의 승인을 거치도록 하고, CEO 또는 경영진이 인사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점을 선행 조건으로 제시했다.
◆KPI평가, 임원 성과보수 산정시 ‘소비자보호’ 반영 = 이와함께 금융회사의 성과평가체계(KPI)와 임원 성과보수 산정 기준에 소비자보호 관련 내용이 적극 반영되도록 전면 재설계를 주장했다.
보고서는 “현재 많은 금융회사에서 KPI는 매출액, 순이익, ROE(자기자본이익률), 비용효율성 등 수익성과 재무성과 중심으로 편중돼 있다”며 “이러한 구조는 단기 실적 위주의 경영을 부추기고, 장기적 건전성과 소비자 보호보다는 당기 이익 극대화에 집중하는 문화를 형성하는 결과를 초래해 왔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소비자 보호 및 내부통제 관련 지표의 KPI 반영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민원 발생 건수, 분쟁조정 수용률, 불완전판매율, 금융소비자보호법 위반 여부 등 소비자 보호 관련 항목들을 반영하고 평가 주기를 단기 중심에서 중장기 중심으로 전환해야 방안을 제안했다.
보고서는 “예를 들어 3~5년간의 고객 유지율, 장기 수익성 지표, 해지율 감소 추세, 내부통제 개선 실적 등이 포함될 수 있다"며 "이는 조직 전반에 단기 실적을 넘는 지속가능한 경영전략 수립을 유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부서 및 직무의 특성을 반영한 차별화된 KPI 체계를 마련하도록 했다. 상품 판매 부서와 리스크 관리 또는 내부감사 부서에 동일한 수익 중심의 KPI를 적용하는 것은 업무 성격에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왜곡된 인센티브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임원 성과보수 역시 산정 기준이 과도하게 수익성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며 “수익성 지표의 비중을 일정 수준 이하로 제한하고, 대신 내부통제 수준, 고객 만족도, 민원 발생률, 사회적 책임 이행도(ESG 지표) 등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내부통제 관리 의무관련 책무구조도 도입 안착과 내부통제위반 관련 제재시 감경기준 합리화 등을 개선 과제로 제시했다.
홍 국장은 보고서에서 “국내 실정에 부합하는 금융회사 지배구조 및 감독체계가 구축돼야 한다”며 “이러한 과정이 뒷받침될 때만이 단기적 성과주의의 악순환을 끊고, 금융산업의 공공성과 지속가능성을 강화하는 새로운 조직 문화가 정착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