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에너지

널뛰는 겨울 날씨가 보내는 경고

2026-01-28 13:00:00 게재

절기는 단순한 날짜의 흐름이 아니라, 농경 사회에서 축적된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빅데이터였다. 대한(大寒)은 ‘큰 추위’, 소한(小寒)은 ‘작은 추위’를 의미했다. 실제로 기상청 자료를 보면, 20세기 초반(1912~1940년)까지 대한은 이름값을 톡톡히 하며 연중 가장 낮은 기온을 기록하곤 했다.

그러나 기후 시스템이 변한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이 공식이 깨졌다. 소한이 대한보다 더 매서운 추위를 기록하는 빈도가 늘어났고, “소한 추위에 대한이 울고 간다”라는 속담이 과학적 사실로 굳어지는 듯했다.

동지를 지나 새해 벽두에 찾아오는 소한의 위세가 1월 하순의 대한을 압도하는, 즉 겨울의 정점이 앞당겨지는 추세가 나타났다.

그런데 올해, 우리는 기후변화가 단순히 더워지는 것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해지는 것임을 깨닫고 있다.

1월 초, 겨울답지 않은 포근한 날씨 속에 반소매를 입으며 실종된 겨울을 운운했는데, 대한을 기점으로 시작된 기록적인 한파는 한반도를 냉동고처럼 얼려버렸다.

하루 사이 기온이 10℃ 이상 급락하자 온 국민은 당혹감 속에 옷깃을 여며야 했다. 절기의 이름이나 과거의 통계로는 내일 날씨를 장담할 수 없는 ‘기후 불확실성 시대’를 혹독하게 체험하게 된 것이다.

내일의 날씨 장담 못하는 기후불확실성 시대

기록적인 한파가 닥치면 일반 시민들은 외출을 줄이고 배달 앱을 켜면 되지만, 생계를 위해 거리로 나서야 하는 사람들에게 추위는 생존을 위협하는 흉기가 된다. 손님이 뚝 끊긴 재래시장에서 언 손을 녹이며 자리를 지키는 상인들의 한숨은 하얀 입김보다 더 깊고 무겁다.

‘기후 위기 평가보고서 2025’가 지적하듯, 기후 재난의 피해는 노약자와 빈곤층에 집중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랭 질환자 중 65세 이상 고령층의 비율은 54.8%로 반을 넘는다.

쪽방촌에 거주하는 취약계층에게 강추위는 ‘난방비 폭탄’의 공포를 낳는다.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온기를 돈으로 사야 하는 상황에서, 급등한 에너지 비용은 이들을 차가운 방바닥으로 내몬다.

이상기후는 지역적 양극화라는 또 다른 재난 불평등을 낳고 있다. 한쪽에서는 폭설로 비닐하우스가 무너지고 교통이 마비되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극심한 겨울 가뭄으로 산불의 위험이 커지고 있다.

건조한 대기와 강풍은 작은 불씨도 거대한 산불로 키우는 화약고와 같다. 최근 10년 사이 겨울철 산불 발생 빈도가 급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산불은 주로 산간 오지, 소방차의 진입이 어렵고 고령의 주민들이 모여 사는 마을을 덮친다는 점이다.

산불은 단순히 나무를 태우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의 삶의 터전과 평생 일군 기반을 송두리째 앗아가며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남긴다.

널뛰는 기상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는 기존의 방재 시스템을 넘어선, 치밀하고 유기적인 ‘기후 안전망’이 구축되어야 한다. 정부, 지자체, 그리고 시민사회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우선 중앙정부는 재난 관리 체계를 기후 위기 시대에 맞게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산불을 산림청이나 소방청의 업무로만 생각하는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후 재난은 주거, 복지, 의료, 환경이 복합적으로 얽힌 문제다. 예방과 진화는 물론이고, 재난 이후 주민의 삶을 복원하는 과정까지 포괄하는 범정부적 시스템이 작동되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특히 중요한데, 중앙의 거시적인 정책이 닿지 못하는 모세혈관 같은 현장을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지역 밀착형’ 안전망이 강화되어야 한다.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어르신들을 위해 이장, 통장, 부녀회장 등을 ‘기후 안전 지킴이’로 활용해야 한다. 대면형 재난 알림 체계를 구축하여 위급 시 한 명도 빠짐없이 대피할 수 있도록 돕고, 평소에는 안부를 묻는 돌봄 체계가 작동해야 한다.

치밀하고 유기적인 ‘기후 안전망’ 세워야

이러한 안전망의 근간은 국민 모두의 연대의식이다. 내가 무심코 버린 담배꽁초가 이웃의 집을 태울 수 있고, 내가 낭비한 에너지가 기상이변을 부추길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등산 시 인화 물질을 휴대하지 않는 작은 실천부터, 탄소 배출을 줄이는 소비 습관, 그리고 혹한기에 이웃의 안부를 묻는 관심이 필요하다. 변덕스러운 날씨가 일상이 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정확한 일기예보가 아니라, 혹한 속에서도 서로를 지켜줄 수 있는 튼튼한 사회적 우산이다. 그 우산을 함께 펼쳐 드는 것, 그것이 바로 기후 안전망의 시작이다.

박 현 서울대 객원교수 농림생물자원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