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약세에 아시아통화 하락 왜?

2026-01-28 13:00:00 게재

달러 흔들리는데 원·엔·대만달러 수혜 없어 … 재정확장 등 구조적 압박이 원인

일본 도쿄의 외환거래업체 가이타메닷컴(Gaitame.com)의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미 달러 대비 엔화의 현재 환율이 표시된 모니터 앞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달러 가치가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독립성 훼손 우려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한 외교·통상 행보가 겹치며 달러 자산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 결과다. 그러나 달러 약세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주요 통화들은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달러가 약해지는데도 원화와 엔화, 대만달러가 동반 강세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를 두고 시장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블룸버그 27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블룸버그 달러 현물 지수는 약 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내려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 합병 가능성을 언급한 데다 연준에 대한 정치적 압박이 이어지면서 미국 정책 전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진 것이 결정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달러 하락에 대해 “괜찮다”며 “달러가 스스로의 공정한 수준을 찾게 두고 싶다”고 말해, 약달러를 용인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흐름을 두고 ‘셀 아메리카’ 혹은 ‘디베이스먼트(화폐 가치 훼손) 트레이드’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고 해석한다. 미국의 재정 불안과 정치적 분열, 연방정부 셧다운 가능성까지 겹치며 달러 자산을 줄이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달러 약세와 함께 금값이 오르며 대체 자산 선호도도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도 아시아 통화는 달러 약세의 수혜를 거의 누리지 못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7일 “달러가 유로와 파운드 등 주요 G7 통화에 대해서는 약세를 보이고 있지만, 일본과 한국, 대만 통화는 오히려 장기 저점 부근에서 맴돌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단기 환율 흐름보다 더 깊은 구조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이유는 자금 흐름이다. 달러 가치가 흔들리고 있음에도 글로벌 자금은 여전히 미국으로 향하고 있다. 인공지능(AI) 붐과 미국 증시 강세를 좇아 한국과 대만의 개인투자자들이 미국 주식 매수에 나서고 있고, 대만 생명보험사들은 대규모로 미 국채를 사들이며 자국 통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 미 경제의 상대적 성장력과 투자 매력이 아시아 통화의 반등을 가로막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미국과의 통상 합의에 따른 투자 약속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일본은 5500억달러, 한국은 3500억달러, 대만은 2500억달러를 미국에 투자하기로 약속했다. 이는 장기간에 걸친 대규모 자본 유출을 의미하며, 환율에는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미국이 한국에 대해 관세 인상 가능성을 다시 언급한 점도 원화에 부담을 주고 있다.

각국의 국내 사정도 통화 약세를 키우고 있다. 일본은 확장 재정 기조가 이어지며 엔화 신뢰가 흔들리고 있고, 한국은 개인투자자들의 해외 주식 쏠림이 원화 수요를 약화시키고 있다. 대만 역시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 내 공장 투자 자금을 현지에 남겨두면서 자국으로의 달러 유입이 제한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엔화의 최근 급등은 예외적 사례로 평가된다. 최근 엔화 반등은 미 재무부와 일본 당국이 외환시장 개입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커진 데 따른 것이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달러·엔 환율을 점검한 사실이 전해지며, 1985년 플라자 합의를 연상시키는 미·일 공조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다만 FT는 “이는 구조적 반전이라기보다 정책 신호에 따른 단기 반응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소시에테제네랄의 키트 주크스 외환 전략 책임자는 “고령화와 과잉 저축, 수출 중심 성장 구조를 가진 국가들은 약한 통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통화 약세가 단기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요인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바클레이스의 미툴 코테차 아시아 외환 전략 책임자와 JP모건자산운용의 제이슨 팡 선임 포트폴리오 매니저 역시 글로벌 자금이 여전히 미국 자산으로 유입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달러 체제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음에도 아시아 통화의 반등은 제한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FT는 이러한 구조 속에서 아시아 통화가 달러 약세의 수혜를 즉각 누리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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